지난주 서울 강남구 일대는 ‘초등학생 납치 미수’ 신고로 떠들썩했다. 지난 16일 오후 6시 20분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50대 남성 2명이 초등학생에게 “음료수를 사주겠다”며 접근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같은 날 개포동의 한 초등학교에서도 하교하던 초등학생이 노인에게 위협을 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학교엔 “우리 애들은 안전하냐”며 불안을 호소하는 학부모들의 연락이 빗발쳤다. 학교는 즉각 유괴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보호자의 허락 없인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도 따라가지 않도록 지도해달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배포했다. 서울시교육청도 강남구와 서초구 관내 모든 유치원과 초등학교 100여 곳에 등하교 안전 지도를 강화하라며 공문을 보냈다.
다행히 해프닝이었다. ‘역삼동 납치 미수범’으로 의심받은 50대 남성 2명은 경찰 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저녁 자리를 마치고 다른 술자리로 이동하던 길이었다. 대형 마트 앞 차도 가까이에서 놀고 있던 아이를 발견하고 “위험하다”고 했다. 땀 흘리며 숨을 헐떡이는 아이를 보고 둘 중 한 명이 “음료수 사줄까”라고 물었다. 다른 한 명이 농담하듯 “형은 인상이 안 좋잖아. 애들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아이가 “아니요”라며 거절하자 남성들은 돌아갔다. 경찰이 당시 상황이 담긴 감시 카메라 영상을 확인해봤다. 실제 남성들의 진술과 일치했다. 아이에게 신체 접촉을 하지도 않았다. 경찰이 이들에게 혐의점이 없다고 보고 귀가시킨 이유다.
개포동 초등학교에서 들어온 ‘납치’ 신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3급 치매를 앓고 있던 70대 노인이 한 학생의 가방을 잡아당기며 “내 것”이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 경찰은 두 사건 모두 ‘혐의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
무심코 내뱉은 친절의 말도, 치매 노인의 헛소리도 공포로 이어졌다. 앞서 강남구는 지난 2023년 대치동 학원가에서 필로폰과 우유를 섞은 액체를 집중력 강화 음료라고 속여 학생들에게 마시게 했던 일명 ‘대치동 마약 음료 사건’으로 한 차례 홍역을 앓은 바 있다. 학부모들의 걱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이 상황을 취재하면서 요즘은 ‘무관심이 곧 친절함’이 됐음을 절감했다. 무관심은 더 이상 무신경이나 냉대의 다른 말이 아니라, ‘당신을 해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다. 지하철 좌석에 앉아 휴대전화 카메라 렌즈가 상대방을 향하지 않도록 각도를 조절하는 것도, 늦은 밤길 앞서 걷는 이와 적당히 먼 거리를 유지하며 걷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고놈 참 귀엽다”며 받았던 동네 이름 모를 아주머니의 요구르트도, 버릇없이 굴면 꾸짖던 동네의 ‘이놈 아저씨’도 추억이 됐다. 적극적인 친절은 곧 위협이 된 세태. 당연히 즐거울 수만은 없는 세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