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대문구에서 보건소 관계자들이 '러브버그'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러브 버그의 정식 명칭은 '플리시아 니악티카'다. 한국에서는 털파리로 불린다. 러브 버그는 건조한 날씨에 약하지만, 최근 수도권에 장마가 이어지면서 개체 수가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연합뉴스

2020년 여름은 우리나라가 벌레의 습격을 받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시기였다. 그해 여름 전국은 갑자기 도시를 뒤덮은 매미나방 떼에 시달렸다. 날개에서 떨어지는 가루는 두드러기를 일으켰고 나방이 소복하게 앉은 나무들은 고사했다. 지자체마다 매미나방을 방제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쉽지 않았다. 매미나방뿐만이 아니라 나뭇가지처럼 생긴 대벌레, 절지동물인 노래기가 뒤덮인 동네는 악취에 시달렸다.

▶유례없는 벌레들의 습격은 직전 겨울 이상고온 현상 때문으로 밝혀졌다. 곤충의 알은 월동 기간에 많게는 90% 이상 죽는다. 그러나 2019년 겨울은 눈이 오지 않은 데다 평균기온이 3~4도에 이를 정도로 따뜻했다. 이 때문에 해충 알이 죽지 않고 잘 부화해 이상 증식이 발생했다. 이런 조건에서 그해 여름에도 높은 기온을 보이자 알에서 성충에 이르는 기간이 짧아지고 유충의 초기 생존율까지 급격히 높아져 벌레 개체수가 급증한 것이다.

▶골치를 썩이는 곤충은 이뿐이 아니다. 꽃매미는 포도나무, 복숭아나무 등 진액이 많은 나무의 가지에 달라붙어 즙을 빨아먹는다. 강원도 등에서는 미국산 선녀벌레가 크게 늘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선녀벌레로 인한 사과나 옥수수 등 농작물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야생화 꽃대 등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흉하게 달라붙어 있는 것이 대개 선녀벌레 약충(어린 벌레)이다.

▶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 벌레의 습격은 아직 애교 수준이다. 2015년 미국 아이오와주에서는 하루살이 떼가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었다. 벌레가 집도 뒤덮고 차와 보트 등 물 근처에 있는 거라면 뭐든지 뒤덮어 교통사고가 속출했다. 하루살이 수가 너무 많아 컴퓨터의 기상 레이더가 비구름으로 오인할 정도였다. 중국 등에서는 메뚜기 떼 습격을 받는 일이 드물지 않다.

▶서울 은평구·마포구, 경기 고양시 등 수도권 서북부 일대에 이른바 ‘러브버그’로 불리는 털파리 떼가 대거 등장해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러브버그는 인체에 무해한 데다 진드기 같은 해충을 잡아먹는 익충(益蟲)으로 알려졌지만 날파리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온도와 습도가 높으면 애벌레가 빨리 자라는데 얼마 전 장마로 습도가 높아지면서 유충 발달 속도가 빨라져 발생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곤충들 생태계도 변화하면서 우리나라도 앞으로 벌레들의 습격이 잦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러브버그의 습격은 그 예행연습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