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토종 법률 AI(인공지능) ‘슈퍼로이어’가 어렵다는 변호사 시험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공법·민사법·형사법 관련 150문제에서 111개를 맞혔다(정답률 74%). 시험 합격선은 103개다. 수재들이 간다는 로스쿨 졸업자의 합격률이 53%에 불과한데, 슈퍼로이어는 상위 30% 수준의 성적을 거뒀다. 국내 모든 법령과 판례 495만건, 법률 서적 600권을 학습시킨 결과다.

▶AI가 왜 100점을 못 받았는지도 궁금하다. 판례 중심의 영미법 체계에선 AI에 판례만 잘 학습시키면 쉽게 정답을 골라낸다. 반면 한국처럼 법전 중심의 대륙법 체계에선 판사의 법 해석 여지 탓에 AI에 정답을 골라내는 훈련을 시키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슈퍼로이어 개발팀장은 “‘옳은 것, 틀린 것을 찾으라’는 문제는 쉽게 풀지만, ‘법 취지에 맞는 해석을 모두 고르라’는 식의 종합적 추론이 요구되는 문제는 어려워한다”고 설명했다.

▶법률은 AI의 씀씀이가 커질 수 있는 대표적 분야다. 법령과 판례만 제대로 학습시키면 AI가 인간 변호사보다 훨씬 뛰어난 비서가 될 수 있다. 작년 초 프랑스에선 1년에 69유로(약 11만원)만 내면 언제든지 법률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이 등장했다. ‘변호사가 1년 걸릴 일을 단 1분이면 해결한다’는 홍보 문구를 내걸었다. 미국에선 초당 10억장씩 판례를 검색해 의뢰인의 질문에 답을 주는 법률 AI ‘로스(ROSS)’가 인기를 끌고 있다. 브라질에선 인간 판사가 AI 작성 초안을 토대로 판결문을 쓰고 있다.

▶가끔씩 등장하는 AI와 인간 변호사 간의 대결 이벤트에선 AI 법률가가 늘 이긴다. 몇 년 전 미국 최고 변호사와 AI가 각종 ‘비밀 유지 계약서’의 오류를 잡아내는 경기를 했는데, 인간 변호사는 평균 85% 정확도를 보인 반면 AI는 95% 정확도를 기록했고, 작업 시간도 4분의 1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근로 계약서’의 문제점을 식별하는 경쟁에서 AI가 인간 변호사팀을 이겼다.

▶하지만 넘어야 할 장벽이 적지 않다. AI엔 거짓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제시하는 환각 현상이 있다. 미국에선 한 변호사가 AI가 써준 가짜 판례를 법원에 제출했다가 변호사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밥그릇을 걱정하는 변호사 집단의 저항도 거세다. 국내에선 작년 3월 한 로펌이 ‘AI 변호사’를 선보였다가, 변호사협회의 반발 탓에 7개월 만에 서비스를 접었다. 하지만 막는다고 막아질 흐름이 아니다. AI와의 슬기로운 공존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