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화가 제임스 엔소르(James Ensor·1860~1949) 작 ‘예수의 브뤼셀 입성’은 로스앤젤레스 J. 폴 게티 미술관 소장품 중 가장 큰 회화다. 그 앞에 서면 거리를 빈틈없이 가득 메운 군중이 눈앞으로 밀려오는 것 같다. 하나같이 섬뜩하고 기괴한 가면을 쓴 수많은 사람의 거침없는 행렬은 공포와 함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예수께서 브뤼셀로 입성하는 장면이라는데, 과연 예수는 어디에 계시는가.
성경에 따르면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자 많은 이가 몰려와 겉옷을 벗어 길에 깔고 종려나무와 올리브 가지를 흔들며 크게 환호하면서 구세주의 도래를 반겼다고 한다. 기독교권의 많은 국가에서는 부활절 전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카니발이 벌어지는데, 엔소르 또한 19세기 말 브뤼셀의 카니발을 그린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카니발용 가면을 만들어 팔았다니, 그림 속 기묘한 얼굴들은 바로 가면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가면인지, 아니면 원래 얼굴이 이토록 흉측한지 알 수가 없다. 저마다 일그러진 얼굴을 보란 듯 드러낸 인파 속에서 당시 유명 인사들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밀려오는 인파 뒤편에 희미한 후광을 두르고 나귀를 탄 채 파도에 휩쓸리듯 힘없이 다가온다. 엔소르는 믿음을 외치면서도 정작 예수는 거들떠보지 않는 무지한 군중 속에서 외롭게 선 선지자의 모습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었다.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가의 삶이 그토록 외로웠기 때문이다. 원색이 소용돌이치는 기괴한 이 대작을 환영하는 전시회는 아무 데도 없었다. 이 그림은 사람들 눈을 피해 오랫동안 화가의 집에 걸려 있었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