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화가 제임스 엔소르(James Ensor·1860~1949) 작 ‘예수의 브뤼셀 입성’은 로스앤젤레스 J. 폴 게티 미술관 소장품 중 가장 큰 회화다. 그 앞에 서면 거리를 빈틈없이 가득 메운 군중이 눈앞으로 밀려오는 것 같다. 하나같이 섬뜩하고 기괴한 가면을 쓴 수많은 사람의 거침없는 행렬은 공포와 함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예수께서 브뤼셀로 입성하는 장면이라는데, 과연 예수는 어디에 계시는가.

제임스 엔소르, 예수의 브뤼셀 입성, 1888년, 캔버스에 유채, 252.7x430.5cm, 로스앤젤레스 J. 폴 게티 박물관 소장.

성경에 따르면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자 많은 이가 몰려와 겉옷을 벗어 길에 깔고 종려나무와 올리브 가지를 흔들며 크게 환호하면서 구세주의 도래를 반겼다고 한다. 기독교권의 많은 국가에서는 부활절 전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카니발이 벌어지는데, 엔소르 또한 19세기 말 브뤼셀의 카니발을 그린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카니발용 가면을 만들어 팔았다니, 그림 속 기묘한 얼굴들은 바로 가면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가면인지, 아니면 원래 얼굴이 이토록 흉측한지 알 수가 없다. 저마다 일그러진 얼굴을 보란 듯 드러낸 인파 속에서 당시 유명 인사들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밀려오는 인파 뒤편에 희미한 후광을 두르고 나귀를 탄 채 파도에 휩쓸리듯 힘없이 다가온다. 엔소르는 믿음을 외치면서도 정작 예수는 거들떠보지 않는 무지한 군중 속에서 외롭게 선 선지자의 모습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었다.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가의 삶이 그토록 외로웠기 때문이다. 원색이 소용돌이치는 기괴한 이 대작을 환영하는 전시회는 아무 데도 없었다. 이 그림은 사람들 눈을 피해 오랫동안 화가의 집에 걸려 있었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