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책으로 말하고, 책이 불살라지면 행동으로 보여준다.
과거엔 동베를린이었지만 지금은 베를린의 중심인 훔볼트 대학 건너편에는 베벨 광장이 있다. 직사각형 광장은 국립 오페라 극장, 성 헤드비히스 대성당, 도서관 등 역사적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1743년 오페라하우스 광장(Platz am Opernhaus)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된 광장은 2차 대전 때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전쟁 후에 동독에서 복구하면서 사회민주당의 창시자 아우구스트 베벨(August Ferdinand Bebel)의 이름을 붙였는데, 통일 후에도 베를린시는 그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사실 베벨 광장은 분서(焚書)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1933년 5월 10일에 나치의 사주를 받은 학생들이 나치가 불온하다고 낙인찍은 책들을 이곳으로 모아왔다. 선전장관 괴벨스가 선동적 연설을 하고 책을 불태우기 시작하였다. 하인리히 만, 레마르크, 하이네, 마르크스, 프로이트, 로자 룩셈부르크, 츠바이크, 아우구스트 베벨 그리고 에리히 케스트너 등의 저작 2만여 권이었다.
특별한 행사가 없다면 평소에 휑뎅그렁한 광장은 사진이나 하나 찍고 돌아서기 십상이다. 그러나 발밑을 살피며 걸어보면, 광장 가운데에 바닥이 뚫려 있는 곳이 있다. 거기에는 땅 밑을 볼 수 있도록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는데, 안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거대한 서가(書架)가 보인다. 그러나 흰 서가는 책이 한 권도 없이 텅 비어 있다. 이것은 1995년 미하 울만(Micha Ullman)이 설치한 작품 ‘빈 서가’다. 서가는 2만권을 꽂을 수 있는 규모로, 나치가 없애버린 2만권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침묵으로 웅변한다.
뚫은 유리창 옆에 기념 동판이 있는데, 하이네의 희곡 ‘알만조르(Almansor)’ 중의 한 줄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다만 서곡이었다. 책을 태운 자들은 결국에는 사람도 불태울 것이다.” 시인 하이네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의 경전을 불태운 야만적 행위를 1820년에 쓴 희곡에서 이미 질타하였으며, 나치의 살상도 예견했던 것이다. 자신을 비판하거나 불리하다는 이유로 책을 태우는 것은 가장 무식하고 잔인한 행동이며 자유에 대한 억압이다.
그날 자기들의 책이 불타는 광장에서 태연히 책을 읽었다는 작가가 있다. 아니 속으로는 분루(憤淚)를 삼키면서 인간이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숭고한 행위가 독서라는 것을 보여준 작가는 에리히 케스트너(Emil Erich Kästner·1899~1974)였다.
케스트너는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독일에서도 유서 깊은 건물과 진귀한 유물이 많아서, 도시를 관통하는 강 이름을 따서 ‘엘베의 피렌체’라 부르던 예술의 고도(古都)가 드레스덴이다. 너무나 이 도시를 사랑한 케스트너는 숙련 노동자인 아버지와 미용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인이 채 되기도 전에 1차 대전이 발발하여 징집된 그는 전쟁의 비참함과 군대의 비인간성을 몸으로 경험한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작가가 되어서 많은 칼럼과 저작을 여러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다. 그것들은 대부분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이며, 현실에 대한 회의(懷疑)와 소외된 계층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다.
특히 30세 무렵부터 펴낸 동화 ‘에밀과 탐정들’ 시리즈가 크게 히트하여, 지금도 그를 동화 작가로 인식하는 사람도 많다. 당시 독일에서만 200만부 이상이 판매되었고 60가지 언어로 번역된 이 시리즈는 비록 아동 도서지만 사회에 이례적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나치가 집권하자 그는 금지 작가가 되어 책들은 불태워지고, 본인은 구금되고 고문을 받았다. 2차 대전이 끝나자 그는 서독인 뮌헨에 자리 잡았다. 그는 전후에도 독일의 현실을 소재로 하여 어린이와 성인을 위한 저작을 쓰고, 서독의 사회운동가로서도 널리 활동하였다.
그의 책 가운데에 가장 문제작은 ‘파비안’이다. 이 소설에서 그는 유명한 ‘내가 어렸을 때에’처럼 소년 시절의 드레스덴이 아니라, 청년 시절의 베를린을 그린다. 나치가 집권하기 전에 실직과 굶주림밖에 없던 젊은이 앞에 펼쳐지는 것은 정치적 광신과 환락과 성적 문란이었다. 그런 절망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젊은이는 사회에서 겉돌고 체념한 방관자가 된다. 결국 타락하지도 못하고 순수함을 버리지도 못한 그는 강물에 뛰어든다. 나치는 사회적 갈등과 자신들의 허위를 개선하는 대신,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불태운다. 그리고 이미 하이네가 갈파한 대로 그들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된다.
드레스덴의 알베르트 광장 한쪽에 아담한 2층 집이 있는데, 케스트너 박물관이다. 원래는 케스트너의 삼촌 집이었는데, 그는 어려서 자주 삼촌 댁에 놀러가곤 했다. 안에는 세상을 향한 그의 따뜻한 동화책부터 세상을 질타하는 그의 행동까지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을 나오다 보면 정원의 담 위에 한 소년이 걸터앉은 귀여운 청동상을 볼 수 있다. 케스트너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조각가 마티아스 바르가(Mathyas Varga)가 이 집이 박물관으로 되기 전인 1999년에 세워놓은 것이다. 소년상은 늘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웠던 소년 케스트너가 꿈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깥세상을 내다보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작 케스트너가 자라서 마주한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는 후손에게만은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 세상을 바꾸려고 펜과 행동으로 평생을 권력에 항거하였다. 진정한 예술은 사회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서 시작되며, 그것은 불의 앞에서도 비겁하지 않은 행동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