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디스판 복음서 중 성 루카의 초상, 700년경, 양피지에 채색, 36.5x27.5cm, 런던 브리티시 도서관 소장.

날개를 단 황소가 가뿐히 하늘로 날아오른다. 황소가 날다니 주식 투자자들의 귀가 번쩍 뜨이겠지만, 이 황소는 상승장(上昇場)이 아니라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네 복음서(福音書) 중 루카복음을 쓴 성루카의 상징이다. 그 아래 긴 두루마리에 글을 써 내려가는 노인이 바로 성루카. 예수께서 오시니 이보다 더 복된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이는 린디스판 복음서 중 한 페이지로, 영국 북부 노섬벌랜드의 섬 린디스판에서 698년부터 721년에 세상을 뜨기까지 주교로 봉직하던 이드프리스(Eadfrith·생년 미상)가 직접 글씨를 쓰고 삽화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린디스판은 875년 바이킹의 침략으로 초토화되기 전까지 영국 초기 기독교 전파의 거점이었다. 글을 깨친 이가 드문 시절에 책은 읽기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누가 봐도 명확한 그림과 화려한 채색, 정교한 문자를 통해 신의 말씀이 살아나는 보배로운 성물이었다. 이 책에 10세기에 더해진 영어 주석이 바로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최초의 예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복음으로 이루어진 린디스판 복음서에서는 채식필사본의 전통을 따라 매 복음서 첫 장에 필자의 초상화가 각 상징과 함께 등장한다. 마태오는 예수의 육화를 상징하는 인간, 마르코는 예수의 부활과 승리를 상징하는 사자, 요한은 예수의 재림을 상징하는 독수리와 함께다. 마르코와 요한은 젊은이로 그려져 예수의 신성을, 마태오와 루카는 수염이 긴 노인으로 그려져 인간이었던 예수를 보여준다. 루카의 황소는 바로 예수의 의지와 희생을 상징한다. 인간을 위해 우직하게 일을 하다 마지막까지 뼈와 살을 다 내주고 가는 황소는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이로운 동물로 여겨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