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엄마가 무릎에 아기를 앉힌 채 글을 쓰고 있다. 왼손으로는 아기에게 석류를 쥐여주며 오른손으로는 잉크병에 붓을 담그는데, 하필 그때 아기가 엄마 눈치를 살살 보며 손목을 쓱 잡는다. 저러다 다 쓴 페이지 위에 잉크병이나 엎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이 광경은 요즘 흔한 워킹맘의 재택근무 같지만, 아름다운 이 여인은 ‘마니피캇(Magnificat)’을 쓰는 성모마리아다. 오른쪽 페이지 서두에 선명히 써둔 ‘마니피캇’은 ‘찬양하다’라는 뜻의 라틴어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성모마리아의 노래다.
초기 르네상스의 거장,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1445~1510)가 원형 목판에 그린 이 그림은 개인 저택의 동그란 창 옆에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물 뒤로 둥근 창틀이 보이고, 창밖에는 청명한 하늘 아래 평화로운 전원 풍경이 펼쳐져 있어서, 세속과 천상의 세계가 이 창 하나로 연결된다. 성모에게는 두 천사가 천상의 보관을 씌워주고, 세 천사는 성모자 앞에서 책과 잉크병을 받쳐 들고 있다. 이들은 날개도 없이 당시 상류층의 복장을 하고 있지만, 황금이 출렁대는 머릿결과 그윽한 눈빛, 유려한 몸놀림은 천사의 품격을 보여준다.
이 그림의 특별한 점은 성모마리아가 글을 쓴다는 데 있다. 기독교 미술의 오랜 역사에서 성모는 주로 책을 읽는 모습으로 그려졌고, 글씨를 쓰고 창작을 하는 건 주로 성인(聖人)과 교부(敎父)들의 몫이었다. 문맹률이 높고 특히 여성 교육에 대한 의식이 낮았던 시기에 인문학이 융성하던 피렌체에서 혁신적인 화가로 성장한 보티첼리의 진정한 혁신은 성모를 통해 아기를 안고도 글을 쓰는 여인의 전범(典範)을 보여준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