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화폐.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는 전즉시공(錢卽是空)이요 공즉시전(空卽是錢)이다. ‘쩐(錢)’이 곧 공(空)이고, 공이 곧 ‘쩐’이 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가상화폐는 휴대폰 화면이나 컴퓨터 화면에만 보이는 돈이다. 화면에 숫자로만 존재한다. 화면의 숫자. 이것이 가상(假想)이다. 그런데 이 가상이 돈의 실체다. 화면에 숫자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돈이다. 손으로 만져 볼 수가 없는 돈이다. 황금은 금속이다. 손으로 만져보면 묵직한 느낌이 든다. 돈은 묵직한 느낌이 들어야 맞는다. 그래야 돈 맛이 느껴진다. 이것이 지폐로 변했다. 황금에 비해서는 실체감이 훨씬 떨어지지만 지폐도 손맛은 있다. 5만원짜리 100장이 묶여 있는 돈 몇 다발을 손에 쥐어 보면 든든한 느낌이 들지 않던가! 지폐에다 코를 가까이 대면 돈 냄새도 난다. 장롱에도 넣어둘 수 있고, 책상 서랍에도 지폐를 넣어둘 수 있다. 그러나 가상화폐는 장롱에다가 넣어둘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 볼 수도 없고 냄새도 맡아 볼 수 없다. 오로지 화면에만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화면상에서만 명멸(明滅)하는 것이다. ‘찰나생(生) 찰나멸(滅)’하는 공의 세계다.
21세기 들어와 우리 눈앞에 대두한 휴대폰 화면. 이 화면은 가상[空]의 세계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 가상이 곧 돈으로 전환된다. 돈은 색계(色界)를 대표하는 물건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색계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세계를 가리킨다. 색계에서 인간을 매혹하는 두 가지 대상은 돈과 섹스다. 인간은 이 두 가지에 매혹당해서 돌진한다. 예전에는 섹스가 색계를 대표하였지만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순위가 바뀌었다. 이제는 섹스보다도 돈이 더 사람을 매혹한다. 돈이야말로 색계의 대마왕이다. 대마왕 앞에서 너나없이 똘마니가 된다.
그런데 이 가장 강력한 힘, 실체가 가상 화면에서 명멸하는 숫자로 존재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이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전즉시공(錢卽是空) 공즉시전(空卽是錢)’의 도리이다. ‘쩐’과 ‘공’이 이렇게 한 묶음으로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 있다는 걸 가상화폐처럼 명쾌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없다. 두 가지 측면 중에서 공을 보는 사람은 이게 사기라고 생각하고, 쩐을 보는 사람은 대박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가상 시대가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