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자두나무 위 산누에나방의 변태, 1679년, 양피지에 판화, 18.7x14.9cm, 로스앤젤레스, J. 폴 게티 박물관 소장.

겨울이 가고 기온이 오르면 어디선가 기다렸다는 듯 온갖 벌레들이 생겨난다. 고대 자연과학을 집대성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곤충이 진흙 같은 무기물에서 우연히 발생한다고 했다. 곤충 자연발생설은 17세기까지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을 뿐 아니라, 흉측한 유충은 기독교 교리와 맞물려 ‘악마의 짐승’이라고 지탄받기도 했다. 17세기 중반 독일 태생의 동식물 연구자이자 삽화가, 출판인이었던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Maria Sibylla Merian·1647~1717) 이전까지 누구도 곤충의 변태 과정을 눈여겨보고 기록한 이가 없었던 것이다.

마리아는 유럽 최대의 판화 및 출판업 가문인 메리안가의 자손이지만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정물화가인 의붓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그녀는 두 부친에게서 극도로 세밀한 수작업을 요구하는 판화의 재능과 사물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는 정물화 기술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마리아 메리안을 위대하게 만든 능력은 자연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끈질긴 관찰력이었다. 어릴 때 누에를 관찰하며 그 놀라운 변태 과정에 매료된 그녀는 백여 종의 나방과 나비를 직접 수집하고 기르며 알에서 애벌레가 되고, 애벌레가 잎을 먹으며 자라나 번데기가 되었다가 그 속에서 성충이 날아오르는 과정을 정교한 삽화로 그려 출판했다.

그녀에게 곤충의 변태란 위대한 신의 권능을 증명하는 현상이었지만, 여성의 외부 활동이 금지된 당시 사회에서 더구나 ‘악마의 짐승’을 연구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진리를 탐구했던 그녀의 이름은 지금 수십 종의 나비, 나방, 딱정벌레, 벌, 거미, 도마뱀, 달팽이의 이름이 되어 지구 위를 날고 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