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절벽에서도 금계국(金鷄菊)이 피는구나. 늘 지나는 길, 불쑥 눈에 띈 놀놀한 꽃. 오십 미터는 떨어졌건만 건방지게 아는 체하려다 아차 싶었다. 며칠 전 꽃 시장에서 덜 핀 작약(芍藥)이랑 장미도 분간 못한 깜냥에 무슨…. 더구나 노랑이가 한둘이더냐. 꽃 시장 나들이야 한 해 고작 두 번이니 그 모양인데, 숨쉬기 같은 우리말 가려 쓰기도 여간 만만치 않다.
‘백신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증인은 이름 밝히기를 꺼려해….’ ‘꺼려하는/꺼려해’의 뼈대인 ‘~어하다’는 동사를 만드는 낱말 구조로 형용사와만 어울린다. 기뻐하다, 반가워하다, 예뻐하다, 좋아하다 따위다. 한데 ‘꺼리다’는 동사여서 이런 구조가 성립하지 않는다. ‘꺼리는, 꺼려’ 하면 되니까. 역시 동사인 ‘설레다’도 ‘설레하는, 설레할’ 식으로 간혹 틀린다(→설레는/설렐). 주로 마음 작용을 나타내는 말이라서 형용사로 여긴 탓이리라.
동사를 형용사로 착각한 오류는 어미(語尾) 활용에서 흔하다. ‘충청도는 왜 웃긴가?’ 재치와 간결함으로 웃기는 충청도 말을 다룬 책이다. 문제는 ‘웃긴가'라는 표기. 동사는 형용사의 ‘ㄴ가’ 대신 ‘는가’를 의문형 어미로 쓴다. 제목 지은 의도야 어떻든, ‘웃기다’가 동사이므로 어법으로는 ‘웃기는가’가 옳다. ‘비는 왜 내리는가’ 해야 할 걸 ‘내린가’ 하면 말이 안 되듯이.
연결 어미도 곧잘 동사의 정체성을 흔든다. ‘그가 뭐라 말한지 알 수 없었지만, 적대감은 없어 보였다.’ ‘ㄴ지(은지)’ 역시 형용사와만 결합한다. ‘조용한지, 넓은지, 힘든지’처럼. 동사에는 ‘는지’를 붙여 ‘말하는지, 말했는지’로 써야 한다. ‘비가 언제 온지/그친지 알 수 없지만’이 아니라 ‘오는지(왔는지)/그치는지(그쳤는지)’처럼.
사무실 창밖에 마침 붉디붉은 꽃이 흐드러졌다. 너희, 장미 맞지? 누가 한마디 하게 생겼다, 이런 촌놈. 하다못해 시골 누나네 집 꽃 이름 여남은 가지라도 익혀야 그 소리 안 듣지. 올해가 후딱 가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