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무제'(이 그림을 한 시간 보는 자는 증권시장에서 성공한다), 2002, 캔버스에 아크릴릭, 76.2x91.4㎝, ©Nam June Paik Estate,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이 그림을 한 시간 보는 자는 증권시장에서 성공한다’니 주식이 있든 없든 귀가 솔깃할 제목이다. ‘행운의 편지’ 같은 가짜 부적인가 싶지만 작가는 무려 백남준(1932~2006). 전설적인 미술가인 데다, 당대 서울 최고의 갑부집 아들이 한 말이니, 밑져야 본전이다 생각하고 마침 지금 이 작품을 전시 중인 백남준아트센터에 방문하여 한 시간쯤 투자해봐도 좋겠다. 혹 누군가 2002년 이 작품을 들여다보다 주위를 둘러보니 소니를 쓰던 백남준이 어느샌가 삼성 TV로 작품을 모두 바꾼 걸 눈치채고 삼성전자 주식을 산 뒤 지금까지 버텼다면 큰돈을 벌었을 것이다.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을 비롯하여,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전을 유치하고,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과 광주 비엔날레 창설 등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적 도약을 위해 그가 가진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총력을 기울였던 백남준은 거장으로서 전성기라 할 그 시점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남은 10년을 휠체어에서 보냈다. 그렇다고 창작 의욕이 꺾인 건 전혀 아니어서 그는 쉴 틈 없이 솟아나는 아이디어를 글과 그림으로 쏟아냈고, 이 작품은 그중 하나다.

마치 글씨를 처음 배운 어린아이처럼 한 문장에 색을 여럿 바꿔가며 자유분방하게 써둔 이 황당한 주문을 한 시간 동안 바라볼 참을성이 있는 자, 그 시간이 무료하지 않을 만큼 정신이 충만하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자라면 요동치는 증권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자유를 위한 자유를 꿈꾸고, 목적 없는 예술을 평생 추구했던 예술가의 기를 받아 물욕을 버리고 해탈한 채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나름의 성공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