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2021년)는 '신곡'을 쓴 단테 사후 700주기. 조명을 비춘 단테 두상 사진들. /City of Ravenna

가장 영향력 있는 이탈리아 문학 작품,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은 이 3행 연구(聯句)로 시작된다. 1304~1321년 단테 알리기에리가 쓴 이 작품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그 언어와 문학이 발달하고 확산되는데 있어, 한국에서 한글의 발명과 보급 만큼이나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신곡’은 신(神)에 다다르는 인간의 여정을 상징하는 지옥, 연옥, 천국편의 세 부분으로 이뤄진 장편 서사시이다. 단테의 이 여행은 성(聖)금요일 전날 밤부터 1300년 봄 부활절 이후 수요일까지 7일간 이어진다. 단테는 지옥과 연옥에서 위대한 로마 시인 버질(Virgil)의 안내를 받으며, 기사도적 사랑의 이상을 상징하는 피렌체 여인 베아트리체가 천국에서 그를 인도한다. 죄를 깨닫고 그것을 거부하는 지옥에서 출발해 연옥에서 기독교적 회개의 삶을 거친 뒤, 신을 향해 승천한 영혼의 여정은 천국에서 끝을 맺는다..

여전히 ‘현대 시인’인 단테

단테 사후 700주년인 올해, 이탈리아와 전 세계에서 수많은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무엇이 단테를 7세기가 흐른 뒤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게 하는 것일까.

문학저널 ‘알레기에리’의 주간(主幹)인 주세페 레다 볼로냐대 이탈리아 문학 교수는 “단테의 메시지는 인간이 여전히 추구하고 있는 도덕적 향상과 개인의 성장의 여정을 상징하기 때문에 현재에도 울림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단테 번역가인 부산외대 비교문학부 박상진 교수는 “단테는 보편성을 가진 시인이었기에 시공의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라며 “단테의 작품에 결정적인 개념은 ‘타자성’이고, 그것 없이는 보편성 역시 유지될 수 없다”고 했다. “단테의 목표는 인류가 불행한 상태에서 행복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이죠.” 이탈리아 라벤나에 있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단테 센터의 이보 라우렌티니 신부는 “단테의 작품은 영적이며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삶의 모든 측면을 아우른다”고 덧붙였다.

‘신곡’을 쓴 이탈리아 시인 단테의 700주기인 올해, 이탈리아는 기념 행사로 떠들썩하다. 왼쪽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 아틸리오 런칼디에르가 그린 단테 초상화. 가운데 사진은 이탈리아 반도 700㎞를 7개월간 종주하며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공개 공연하는 ‘떠돌이 단테’ 프로젝트 공연 장면이다. 오른쪽 사진은 단테가 말년을 보낸 라벤나에 있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수도원 내 단테의 무덤. /Ravenna Istituzione Biblioteca Classense Museo e Casa Dante, Naufraghi Inversi, City of Ravenna

단테의 유해, 파란만장했던 운명

라벤나와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들은 단테와 인연이 깊다. 라벤나는 시인의 마지막 안식처였고, 그의 시신에 얽힌 역사는 단테의 삶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1321년 단테가 죽자 그의 무덤은 라벤나 성 프란치스코 성당 벽에 마련됐지만, 1500년대에 이르자 피렌체 사람들이 그의 유해를 빼앗아 피렌체로 가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인근 수도원에 숨겨졌다. 1667년경 지역 수도사 한 사람이 단테의 유해를 공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그 뒤 2세기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후 1865년에 수도원 외벽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단테의 뼈가 담긴 나무 상자가 발견됐고, 그의 유해는 1781년 세워진 무덤 건물에 잠들었다.

단테는 교황과 황제가 정치적으로 거세게 대립하던 시대를 살았다. 단테는 황제 쪽에 기울었고, 교황파가 승리한 뒤 추방당한다. 그의 시가 갖는 윤리적 가치 역시 오늘날과 같기 때문에 매우 현실적 의미를 지닌다. 피렌체의 단테 700주년 기념행사 조직위 사무총장인 카를로 프란치니는 웃으며 말했다. “700년이 흘렀지만 정치는 별로 안 변했어요. 그 때는 ‘교황 대 황제’였고 지금은 ‘미국 대 중국’이 됐을 뿐이죠.”

인간의 다면성과 압도적 가상현실을 詩 텍스트로 결합

사람이 가진 다면적 본성의 모든 측면을 포착해내는 단테의 능력 역시 여전히 그의 작품이 보편적인 매력을 갖는 이유 중 하나다. 저널 ‘디지털 단테’ 편집장인 테오돌린다 바롤리니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인간의 다양성과 차이를 담아내는 단테의 방식은 매력적이다. 게다가 읽는 사람이 믿지 않을 수 없는, 압도적으로 진짜 같은 가상의 현실을 창조해낸다”고 했다. “단테의 작품에는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셰익스피어와 같은 고차원적 예술성과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과 같은 가상 현실 창조 기술이 공존합니다. 이 두 가지 특징이 가장 숭고한 시의 텍스트 속에 결합하다니 얼마나 비범한 일입니까!”

올해(2021년)는 '신곡'을 쓴 단테 사후 700주기. 이탈리아 라벤나의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 있는 단테 무덤 내부 부조. /City of Ravenna

이탈리아 토착어 문학의 아버지

문학 저널 ‘단테’의 부(副)주간인 플로린다 나르디 로마 토르 베르가타 대학 교수는 “단테는 라틴어가 아니라 당대 피렌체에서 쓰이던 토착어(vernacular)를 문화 전파를 위한 이상적인 수단으로 신중하게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셰익스피어가 썼던 영어와 달리, 1300년대에 단테가 썼던 말은 오늘날의 평균적 이탈리아인이라면 꽤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죠.”

협성대 영문학과 김구슬 명예교수는 “단테는 자신만의 언어를 정립하기 위해 라틴어가 아닌 당대의 토착어를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구운몽’을 쓴 김만중과 같은 저명한 작가들이 모국어의 가치와 정신을 강조하며 한글이 아닌 한문으로 글을 쓰는 것은 앵무새의 사람 말 흉내내기나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김 교수는 올해 초 이탈리아 코모에서 로라 가라바글리아 예술감독이 조직한 ‘시(詩)의 집’ 프로젝트에 참여해 신곡 지옥편의 첫 3행을 한국어로 낭독했다. 김 교수는 최동호 시인과 함께 오는 10월 코모에서 열리는 베르시 국제 유로파 시 축제에도 참가한다.

올해(2021년)는 '신곡'을 쓴 단테 사후 700주기. 7개월간 이탈리아 반도 700㎞를 이동하며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공개 공연하는 '떠돌이 단테' 프로젝트 공연 장면. /Naufraghi Inversi

7개월간 700㎞ 이동하며 ‘지옥편’ 공개 공연

이탈리아어로 최고의 시인 ‘소모 포에타(Somo Poeta)’는 그대로 단테를 가리킨다. ‘소모 포에타’를 기념하는 수천 건의 행사 중 하나인 ‘떠돌이 단테(Itinerdante)’는 ‘민중의 언어’ 개념을 부각시킨다. 연기 그룹 ‘나우프라기 인베르시(Naufraghi Inversi)’를 만든 유제니오 디 프라이아와 리카르도 소치의 아이디어다. 이탈리아 반도 700㎞를 종주하며 7개월 동안 신곡 지옥편을 공개 공연한다. 디 프라이아는 “지금 인류가 지옥편의 현대판을 살아가고 있지 않으냐”고 했다. “단테의 목표는 인류가 올바른 길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어두운 숲’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진실한 삶을 살라고 북돋우지요. 광적인 성공 지향, 디지털 소외 같은 것들이 바로 현대의 ‘어두운 숲’입니다.”

신곡 지옥편 공개 공연은 독특한 형식으로 열린다. 디 프라이아가 원래의 피렌체 방언으로 낭송하면, 마치 화음처럼 다른 목소리가 현대 이탈리아어로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 사태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멈춰세운 시대, 단테의 지옥편의 마지막 구절대로 ‘다시 별을 바라보라(riveder le stelle)’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노력”이라고 했다. 이들의 공연 투어는 9월에 라벤나에서 끝난다.

‘떠돌이 단테’의 생각은 나르디 교수의 설명과도 공명한다. “단테는 사람의 약한 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가치관이 변덕스럽게 바뀌는 시대, 우리는 종종 무엇이 옳은 것인지 초점을 잃곤 하죠. 단테는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의지로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단테와의 산책’, ‘리카르도 무티 콘서트’…

1302년 추방되기 전까지 단테가 살았던 피렌체에서 진행되는 ‘단테와의 산책’도 흥미로운 이벤트다. 그가 살았던 곳과 정치가로서 일했던 장소 등 여행객이 놓치기 쉬운 단테의 도시의 속살을 내보여주는 가이드 투어다.

단테가 추방 뒤 몇 년 살았던 베로나에서도 시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세미나부터 신곡 낭독회 등 다양한 이벤트로 단테 사후 700년을 기념하고 있다. 특히 아킬레 포르티 현대 미술관에서 열리는 ‘단테와 셰익스피어 사이 : 베로나의 전설’ 전시가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는 신곡 천국편을 그린 보티첼리의 드로잉 세 점이 온다. 좀처럼 소장품을 바깥에 내놓지 않는 베를린 판화·드로잉 박물관 소장품이다.

시인의 마지막 안식처인 라벤나는 세계적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콘서트를 포함해 9월 12일까지 이벤트들이 이어진다. 라벤나 축제 사이트(ravennafestival.live)에서 온라인 생중계될 예정이다. 같은 콘서트는 9월 13일 피렌체, 15일 베로나에서도 열린다.

영감의 원천으로서의 단테

단테는 세계 문학에도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영국 토착어 문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시인이자 작가 제프리 초서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 중 우골리노 백작 이야기에서 몇몇 아이디어를 얻었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지는 존 밀턴의 실낙원 역시 우주에 대한 단테의 비전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단테의 영향력은 고전 문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레다 교수는 “단테는 글로벌 대중문화 아이콘이기도 하다. 가장 성공적이고 유명한 소설과 영화에서 그의 작품이 여러 형태로 등장한다”고도 했다.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나, 브래드 피트와 모건 프리먼이 출연한 영화 ‘세븐’도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단서를 얻었지요.”

단테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의 목록은 무궁무진하다. 아르헨티나의 작가이자 시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단 한 권의 책만을 남길 수 있다면, 나는 신곡을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현대 시인 올가 세다코바는 단테에 대한 사랑을 더 공개적으로 밝혔는데, 지난해 이탈리아 잡지 도피오제로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오직 단테의 작품을 원어로 읽는 것만을 목적으로 대학에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다”고 했다. 세다코바는 “단테는 우주에 대한 통합된 비전을 가진 작가였고, 19세기와 20세기의 많은 작가와 시인들이 상실됐던 이 비전을 향한 단테의 여정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자유의 횃불로서의 단테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노력이 한창이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단테는 또 다른 역할로 소환됐다. ‘애국자’로서의 역할이었다. 이 시기 단테의 작품들은 이탈리아 통일 운동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의 아이콘이 됐고, 유럽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독립운동의 상징이 됐다. 레다 교수는 “단테는 추방당했기 때문에 애국자로 여겨졌고, 19세기와 20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모든 민족 독립 운동의 도덕적 올바름의 상징이 되었다”고 했다.

협성대 김구슬 명예교수는 김씨는 단테의 유배를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에 비유했다. “망명 기간 동안 주로 쓰인 단테의 신곡에는 겸손함, 평화, 인류애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1919년 3·1 독립선언서의 핵심 정신도 세계 평화와 인류애에 있지요.”

부산외대 박상진 교수는 단테가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 것이 이탈리아적 정체성 확립에 긴요했으며, 따라서 그의 작품이 이탈리아 민족주의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신채호의 서사극 ‘꿈하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문이나 일본어가 아닌 한국말로 글을 쓰는 것은 한국 민족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박 교수는 2013년 논문에서 작가로서 신채호의 활동이 부분적으로 단테에 대한 그의 이해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신채호는 단테를 계몽적 지식인으로, 신곡을 그의 구원의 기록으로 봤으며, 그 자신이 ‘꿈하늘’을 쓰는 것을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다른 의미에도, 단테의 작품이 구원과 성장의 매우 개인적인 여정에 관한 문학 작품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글을 마무리하기에 신곡 천국편의 마지막 구절보다 더 적합한 언어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