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 노덤벌랜드 동물 우화집 중 호랑이, 1250~1260년, 폴 게티 박물관 소장.

한반도에서는 호환(虎患)이 흔했다지만, 유럽인들에게 호랑이는 그저 말로만 전해 들은 전설 속 괴수였다. 영어 ‘타이거’는 고대 수메르어로 화살을 뜻하는 ‘티그리스(Tigris)’에서 왔다. 고양이처럼 무늬가 있는 거대한 짐승이 마치 화살처럼 재빠르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실물을 본 적이 없는 유럽 화가들은 파란색, 빨간색, 검은색, 흰색 등 온갖 색깔로 호랑이를 칠했다. 어차피 남들도 모르니 별 상관은 없었다.

1세기에 로마의 플리니우스가 ‘박물지’에 쓰기를, 한 사냥꾼이 어미가 없는 틈을 타 새끼 호랑이를 모두 훔쳐 달아났다고 한다. 빠른 말 여러 필을 갈아타며 달렸으나 새끼 잃은 어미 호랑이를 따돌릴 도리가 없자, 그는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새끼를 한 마리씩 던졌다. 어차피 한 마리만 잡아갈 작정이었고, 다른 새끼들은 어미를 따돌리는 데 쓰려던 것. 어미가 떨어진 새끼를 돌보는 틈을 타 달아나고자 했으나, 호랑이는 새끼를 물고도 아랑곳없이 쏜살같이 쫓아왔다. 마침내 한 마리만 남았을 때 사냥꾼이 가까스로 배에 올라 도망을 쳤다는데, 플리니우스는 호랑이가 얼마나 헤엄을 잘 치는지 몰랐나 보다. 어쨌든 이 이야기가 중세에는 사냥꾼이 새끼가 아니라 거울을 던진 것으로 변했다. 13세기, 영국에서 만들어진 이 괴수집의 삽화가 바로 그 장면이다. 새파란 어미 호랑이가 커다랗게 쓴 ‘Tigris’를 딛고 높이 튀어 오르는 순간, 동그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새끼인 줄 알고 멈칫한 틈을 타 말은 사냥꾼과 새끼를 실은 채 그림틀을 뚫고 달아난다. 어미는 반색을 하며 거울을 핥는다. 맹수의 표정이 어찌 이리 다정한가. 역시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게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