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 1410~12년, 양피지에 채색, 런던 브리티시 도서관 소장.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상징을 꼽자면 틀림없이 ‘하트’가 첫손에 들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쑥스러워도 문자에 하트를 붙이거나 손 하트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뭇잎 모양 빨간 하트가 사랑의 상징으로 통용된 건 14세기 초부터다. 그 전까지 기독교 문화권에서 하트는 진짜 심장을 닮은 긴 솔방울 모양으로 그려졌고 이는 예수의 ‘성심(聖心)’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사랑의 여신 비너스가 창공에 나타나자 청춘 남녀가 앞다투어 곱게 쥐고 있던 하트를 건넨다. 여신은 하트를 하나라도 빠트릴세라 초록빛 드레스를 조심스레 모아 쥐었다. 이 그림은 당대 프랑스 궁정 최고의 문필가였던 크리스틴 드 피잔(Christine de Pizan·약 1364~1430)이 기존 인기작을 한데 모아 두 권의 책으로 엮은 뒤 샤를 6세의 왕비였던 바이에른의 이자보에게 1414년 신년 선물로 헌정한 ‘왕비의 책’ 중 ‘오테아의 편지’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오테아는 크리스틴이 만들어낸 가상의 여신인데, 편지 형식으로 15세가 된 트로이 왕자 헥토르에게 고대 신화의 여러 장면을 예로 들어 위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지혜를 설파한다. 당시 크리스틴의 아들 장 드 카스텔이 그 나이였던 바, 자식에게 하고픈 말을 헥토르에게 했던 것.

크리스틴은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점성술사였던 부친을 따라 프랑스 왕실에서 성장했는데, 20대에 남편과 부친이 연이어 사망하여 졸지에 가장이 된 생계형 작가였다. 그녀는 작가로 명성을 쌓은 뒤 이를 발판으로 아비 잃은 아들을 영국과 프랑스의 왕족들에게 돌아가며 맡겨 키웠다. 결국 아들은 프랑스 왕의 시종이 됐으니, 그야말로 그녀가 지켜낸 소중한 사랑의 결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