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에 등장하자마자 국민 관심사가 되었다.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 그러니까 재생에너지 100을 의미한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프로젝트이다. 현실성을 차치하더라도 민간에서 화석연료 사용 감축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화석연료 사용 제한. 좀 더 광범위하게는 온실기체 배출 감축. 식상한 이슈일지 모른다. 종종 질문 아닌 질문을 받는다. 지난 20~30년간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라는 말만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다고. 뭔가 새로운 것은 없느냐고. 그러나 사실 지난 수십 년간 과학자들은 매번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기후변화과학 역사를 종종 북극곰과 연결하곤 한다. 연구를 위해 북극을 방문하게 되면 먼저 생존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중 북극곰을 만났을 때 대처 방법이 있다. 저 멀리 하얀 물체가 보인다면 손을 쭉 뻗어 엄지손가락으로 가려지는지 살펴야 한다. 물체가 가려진다면 대피할 시간이 충분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상황은 심각하다. 건강한 북극곰은 사람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특히 북극곰이 육안으로 확인된다면 이건 위급한 상황이다. 방어용 소총이 없다면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한다.

빗대어 설명하자면 20여 년전 기후변화과학은 지구온난화가 확인되었고 이것은 인류에 의한 것일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는 지구온난화가 인류에 의한 것임이 어느 정도 확실하다고 강조했고 그 증거를 제공했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가 인간에 의한 것이 ‘명백’하며, 만약 대비하지 않는다면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심지어 기후변화라는 표현 대신 기후위기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변화’가 부정과 긍정 모두를 포함한 중립적이라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작금의 지구온난화는 기후변화보다 기후위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말장난이 아니다. 기후변화과학은 지난 수십 년간 지구온난화의 원인에 대한 불확실성을 조금씩 줄여왔던 것이다.

인류가 초래한 위기라는 점에서 해결책도 인류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 논의의 중심에 탄소 중립이 있다. RE100이 다국적 IT 기업들이 주도하는 민간 노력이라면, 탄소 중립은 개별 국가 차원의 노력이다. 그런데 여기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온실기체 배출과 흡수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은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 하늘에는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가 있을까? 많은 수치가 제시되고 있으나 대부분 추정치다. 정확한 관측치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관측 값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산화탄소 농도를 관측한 곳은 안면도 대기관측소다. 369.2ppm, 1999년 처음 관측된 값이다. 그리고 지난 2020년 안면도에서 관측된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는 420.4ppm이었다. 21년간 51.2ppm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값이 대한민국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에 의한 동아시아 전역의 평균적인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를 나타낸다.

정작 온실기체 배출량이 많은 도심 지역과 공업 지역에는 장기간 관측 자료가 없다. 이 때문에 수년 전 노르웨이 과학자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도시가 서울이라고 주장했을 때 대응할 수 없었다. 물론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서울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중국의 영향을 받는 안면도에 비해 서울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30ppm 이상 높다.

온실기체를 가장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방법은 인공위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지구의 70%가 바다라는 점에서 지상 관측소에 비해 인공위성은 장점이 많다. 실제 인공위성으로 온실기체를 관측하는 나라가 여럿 있다. 그 시작은 일본이었다. 2009년 ‘온실기체 관측위성(GOSAT)’을 발사해서 고도 10㎞까지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농도를 측정하고 있다. 다만 관측 해상도가 10㎢로 상당히 낮다. 2014년 발사된 미국의 ‘궤도탄소관측위성-2호(OCO-2)’는 그보다 3배 이상 공간 해상도가 높다. 이 때문에 국지적인 온실기체 배출과 흡수의 구분이 가능하다. 즉 단순히 온실기체 농도를 관측하는 것을 넘어, 온실기체 배출과 흡수를 종합적으로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아직 온실기체를 관측할 수 있는 인공위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안타깝게도 위성 발사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조차 없다. 환경부를 중심으로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예산 문제가 매번 발목을 잡고 있다. 물론 미국 위성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위한 위성이 아닌 탓에 지역적 특성이 충분히 반영될 수 없다. 일례로 구름이 많은 경우 정확도가 크게 떨어져 장마철에는 온실기체 농도를 확인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온실기체 감시 위성은 당장 경제적 이익에는 큰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그러나 파리기후협정 이행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OECD 국가 중 온실기체 배출량 증가율 1~2위인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도구이다. 온실기체 배출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세우기 위해서는 온실기체의 배출·흡수·이동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인공위성은 그 특성상 주변 국가의 온실기체 배출과 흡수 또한 감시할 수 있다. 이는 신속한 국제 협력과 국제적으로 국가 위상을 높이는 데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기후위기는 진부한 이슈가 아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문제다.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 기후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이제라도 기후 과학에 기반을 둔 접근이 필요하다. 그 시작은 아마도 인공위성을 활용한 정확한 온실기체 배출 및 흡수 감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