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곧 한 달로 접어든다. 러시아를 비난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거세다. 유엔 특별총회에서 압도적 다수인 141국이 러시아를 성토했다. 미국과 유럽 및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제재에 나섰다. 유엔 총회만 보면 국제사회에서 러시아가 옹색한 처지인 듯싶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지역별로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특히 중동 지역 친미 국가들의 행보가 묘하다.

UAE(아랍에미리트)는 지난 2월 25일 유엔 안보리 러시아 비판 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했다. 총회에서는 찬성표를 던졌지만 반향이 작지 않았다. UAE를 공격하는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해 미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데 대한 반발 때문이라는 후문이 들린다. 최근 미국산 무기 수입을 줄이고 수호이75 스텔스기 공동 생산을 타진하는 등 러시아와의 안보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미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사우디 왕실은 바이든 대통령의 석유 증산 관련 통화 요청을 거절한 반면, 러시아와는 석유 수급 공조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백악관이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의 배후로 사우디 왕세자를 겨냥한 데 대한 불만이 크다. 사우디와 러시아의 안보 협력설과 함께 사우디·중국 간 석유 거래 대금의 위안화 결제 검토설까지 나오고 있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만에 하나 위안화 결제가 실행된다면 미국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다.

중동의 반미 횡축과 친미 종축 / 그래픽=김하경

이스라엘도 눈에 띈다. 미국이 러시아 비판 안보리 결의안에 대해 동맹국들의 지지 표명을 요청할 때 이스라엘은 침묵했다. 총회에서 찬성표를 던졌지만 대러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위협이 되는 시리아와 이란에서 러시아의 입김이 크기 때문이다. 나토 회원국 터키만 선명하게 러시아 비판 메시지를 냈다. 흑해의 길목 통제도 강화했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에너지, 교역, 관광 등 협력을 감안,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고 있다.

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선의 전황에 주목하고 있지만 중동의 이러한 상황도 예사롭지 않다. 미국이 자리를 비우는 중동에 러시아가 들어와 힘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지정학적 징후로 읽을 여지도 있다. 중동의 역학관계는 사우디가 이끄는 친미 수니파 진영과 이란이 주도하는 반미 시아파 진영의 종파 대립 구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이슬람 혁명의 수출을 공언해 온 이란은 이라크, 시리아 및 레바논으로 영향력을 넓혀왔다. 시아파가 주류인 나라들이다. 이란의 반미 성향이 녹아든 이른바 횡축(橫軸) ‘시아벨트’(Shiite belt)다. 혹자는 이를 기존 질서를 뒤집으려는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이라 부른다. 예멘 시아파 후티 반군까지 포함하면 아라비아반도를 말발굽 모양으로 포위하는 구도로도 읽힌다.

혁명이라면 치를 떠는 인근 왕정 국가들은 이란의 시아벨트에 대응하는 진영을 구축했다. 활 모양의 이른바 ‘수니 호’(弧·Sunni’s Arc)다. 사우디, UAE, 바레인 등 걸프 왕정 국가들이 힘을 모았다. 이에 더하여 최근에는 이스라엘까지 포함하면서 친미 종축(縱軸)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대부분 함께 이란 견제에 나섰다.

이 대립 구도에 러시아가 끼어든 것이다. 마침 미국의 중동 이탈 행보와 맞물렸다. 자국민 저항 세력을 무도하게 살상하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푸틴은 무조건 지지했다. 완강한 러시아 때문에 국제사회도 시리아 문제에 속수무책이었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자 이란 역시 러시아에 급격히 기울었다. 이후 러시아는 중동의 유력자로 자리매김했다. 인근 권위주의 정권들은 러시아를 주목했다. 유사시 아사드처럼 푸틴에게 달려가면 자기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 믿을 법하다. 자유와 인권 압박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미국에 안보를 의존할 수밖에 없던 친미 걸프 왕정 국가들도 권위주의 친화적인 러시아를 다시 보았다. 6년 전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모습을 러시아 주도의 ‘권위주의 축’(Authoritarian axis)의 형성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미·유럽 대결선을 중동에 비추어본다면 당연히 이란, 시리아 등 반미 그룹은 러시아 편을 들고, 친미 그룹은 반러 전선에 서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우디, UAE, 이스라엘은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달리 보면 세력의 큰 그림이 나타난다. 러시아 대외 전략의 핵심 기반인 중앙아시아의 유라시아 연합과 중동 내 기존 반미 축선이 연결되고, 여기에 기존 친미 국가들이 중립으로 이동한 모양새다.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중동에서 러시아의 확장세가 확연하다.

물론 중동의 전통적 친미 우방 국가들이 미국과 절연하리라 보기는 어렵다. 현재로서는 중동에서 이탈하려는 미국에 대한 불만과 경고의 일환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미국에는 부담이다. 다시 우방국들을 다독여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에 중동의 빈 공간을 내어줄 경우, 인도·태평양 전략의 유효성은 현저히 떨어질 공산이 크다. 이란이 ‘저항의 축’으로 남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까지 반미 진영에 가담할 경우 러시아와 중국은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을 거쳐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세력권을 형성하게 된다. 과연 미국이 중동을 떠날 수 있을까?

이 국면에서 미국이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유효한 포석이 하나 있다. 이란 핵 합의다. 이란을 일단 중립지대로 끌어내 최대한 러시아 및 중국과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란 영향권에 있는 국가들도 함께 끌어올 수 있고 유가 안정화도 가능하다. 최근 빈에서의 재협상이 치열했던 이유다. 물론 이란을 우려하는 역내 우방국들을 설득하는 과제도 함께 안아야 한다. 피아가 교차하는 수 싸움이다. 바야흐로 지정학의 시대다. 그러나 20세기 냉전과는 사뭇 다르다. 이전처럼 상대 진영의 말을 제거해야 이기는 체스판이 아니다. 적진 안에 집을 지어가며 세(勢)를 모아가는 바둑의 승부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