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과 함께 음악 축제도 피어난다. 3월 말에 개막한 통영국제음악제, 4월의 교향악축제, 4월 말에 시작하는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 덕분에 음악 애호가들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상황에서 수많은 음악가가 함께하는 음악 축제를 기획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코로나 3년 차에 접어들면서 공연 기획자들의 경험이 많이 쌓인 덕분인지 현재 국내 음악 축제들은 순항 중이다. 방역 완화로 좀 더 많은 관객이 음악 축제를 관람할 수 있고, 코로나로 온라인 생중계가 활성화되면서 방 안에서 음악회를 즐길 수 있게 된 것도 공연계의 긍정적 변화다.

올해 예술의전당의 교향악 축제에선 특히 난도가 높은 대규모 관현악곡이 다수 포함돼 있어 대편성 관현악곡에 목말랐던 음악 애호가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그동안 코로나로 소규모 곡들만 연주해온 것에 반발이라도 하듯, 교향악 축제에 참가한 전국 오케스트라 20곳은 브루크너와 쇼스타코비치 등 여러 대작을 앞다투어 연주하고 있다. KBS교향악단의 브루크너 교향곡 4번, 경기 필하모닉의 드뷔시 ‘바다’, 부산시향의 라벨 ‘다프니스와 클로에’ 등 까다로운 대곡을 완성도 높게 연주하면서 클래식 음악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하지만 최근 오미크론 대확산으로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축제가 무사히 다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혹시라도 공연 당일 출연자 중 확진자가 나오면 곧바로 대체할 객원 연주자를 급히 섭외해야 하는 일도 생기고 있고, 그러다 보니 음악회 당일 한 번 무대 리허설 후 곧바로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들도 있다.

최근 막을 내린 제20회 통영국제음악제에선 공연 기획자들이 음악제 마지막 날까지 계속된 각종 비상사태를 해결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번 음악제는 개막 당시부터 코로나로 일부 공연 취소와 연주 단체 변경 등이 있는 상태로 출발했고 음악제 기간에도, 심지어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폐막 공연까지 출연자와 프로그램 변경이 이어졌다. 본래 폐막 공연에서는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데죄 란키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입국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소프라노 율리아 레즈네바가 대신 출연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음악제 기간 중 두 공연을 소화해낸 레즈네바는 무리한 탓인지 건강 문제로 폐막 공연에 출연할 수 없게 되었다. 레즈네바가 폐막 공연 출연이 불가하다고 알린 시점은 공연 전날 밤이었고 음악회는 다음 날 오후 3시였으니, 당시 무대 뒤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갔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레즈네바의 출연 불가가 확정되자마자 통영국제음악제 기획팀은 급히 소프라노 박혜상을 폐막 공연 협연자로 섭외했다. 본래 박혜상은 이번 통영음악제에서 하이든 ‘넬슨 미사’의 독창자로 초대받았으나 급작스럽게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출연자 변경에 따라 연주 곡목은 퍼셀과 모차르트, 로시니의 아리아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기획팀에서는 무대 리허설 직전까지 이 곡들의 오케스트라 총보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볼 파트별 악보를 급히 마련해야 했다.

공연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무대에 오른 소프라노 박혜상은 흔들림 없는 기교와 아름다운 노래, 표정 연기까지 곁들이며 관객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박혜상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얻은 기회를 100% 활용해 기량을 마음껏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지난 2월 ‘친푸틴’ 러시아 피아니스트를 대신해 세계 정상급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 훌륭한 연주를 선보여 극찬을 받은 조성진의 빈 필 데뷔 무대 역시 준비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었기에 성공할 수 있는 무대였다.

코로나 상황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진 지금의 공연계는 그 어느 때보다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훌륭한 무대를 만들어가는 공연 기획자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성실하게 기량을 연마하고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음악가들의 열정에 뜨겁게 공감하고 있기에 오늘도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