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TV 부처, 1974(2002),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뛰어 봤자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말이 있다. 제아무리 재주를 부려도 벗어나거나 헤아릴 수 없는 높은 차원의 범위 혹은 굴레를 이를 때 쓴다. 그런데 백남준(1932~2006)이 부처님 전에 폐쇄회로 카메라와 모니터를 두고 나니, 나날이 늘어나는 온 사방의 CCTV가 오늘날의 부처님이 아닌가 싶다. 만백성의 일거수일투족을 굽어살피는 카메라는 범죄를 예방하고 단속하는 치안의 방책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시와 인권침해의 도구가 될 수도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높은 차원의 범위이거나 굴레가 아닌가.

‘TV 부처’는 여러 버전이 있으나, 백남준아트센터의 소장품은 ‘항마촉지인’, 즉 부처가 깨달음에 이른 순간 마귀를 굴복시키고 땅을 짚어 지신(地神)을 부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의 장소가 원래의 보리수 아래가 아니라 모니터 앞이다. 불상을 실시간으로 촬영해 그대로 송출해서, 전원이 공급되고 기계가 작동하기만 한다면 영겁의 시간 동안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폐쇄회로’ 안에서 마침내 깨달음에 도달하신 모양새다.

부처께서는 한 화면만 주시하며 진리를 깨우치셨겠지만, 평범한 중생인 우리는 잠깐의 지루함도 참지를 못한다. 수없이 많은 채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머나먼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더 재미있고 더 자극적인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혹 비디오카메라로 내 영상을 담더라도 나를 온전히 바라보며 반성하는 게 아니라, 온갖 앱으로 보정된 환상적인 내 모습을 보며 자아도취에 빠지기에 십상이다. 20세기 중반에 살았던 백남준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 종교와 기술, 동양과 서양을 이어 붙여 21세기적 삶의 모습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예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