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 북한 외무상, 리선권 통일전선부장/뉴스1

북한의 각료 인사는 남한과는 천양지차다. 청문회는 없고 최고 지도자가 결정해서 발표하면 끝이다. 관제 언론인 노동신문에 검증은 없고 각료 결정을 보도할 뿐이다. 10대 소년단 시절부터 인사 카드를 관리하는 북한의 국장급 이상 보직자는 2만여 명이다. 당국은 이들이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 관리한다. 남한에서 장·차관을 발탁할 때 쓰는 경찰 및 정보기관의 기본 인물 자료와는 수준이 다르다.

1948년 정권 수립 이후 통치 권력이 3대 세습된 만큼 여야 개념이 아예 없다. 당과 내각의 구분이 없는 것도 남한과 다른 점이다. 철저한 충성 경쟁 속에서 자질을 선보여서 김정은 위원장의 눈에 들어야만 각료로 발탁될 수 있다. 선군 정치라 군부 출신이 발탁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최근 김정은이 직접 국가 장의(葬儀) 위원장을 맡아 애도의 눈물을 흘린 군 출신 현철해는 일찌감치 백두 혈통의 적장자라며 김정은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옹립에 전력을 다한 사례다.

북한 내각 인사는 남한과 달리 내부 기강 잡기가 주목적이다. 수시로 물갈이 회전문 인사를 통해 긴장을 유도하고 성과 도출을 압박한다. 각료들이 면종복배(面從腹背·복종하는 체하면서 배반)하지 않도록 정보기관에서 철저하게 감시한다. 고위직에 올랐다고 허세를 부리거나 세를 과시할 경우 단두대 칼날이 기다린다. 남한 정치에서 입에 오르내리는 2인자는 없으며 미래 권력은 더더욱 없다.

고위 관료들의 기강이 해이해져 충격이 필요하면 희생양을 조작한다. 공개 처형도 불사한다. 앞에서는 당과 수령을 받드는 척 하고 뒤에 돌아앉아서는 양봉음위(陽奉陰違)하는 행동을 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2013년 고모부 장성택의 전격 처형과 2015년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숙청은 불경죄가 죄목이었다. 불경의 기준은 김정은이 결정한다.

/그래픽=백형선

북한은 인사를 통해 대외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지난달 평양 권부의 대남 및 외교 책임자가 교체되었다. 김정은은 리선권 외무상을 대남 문제를 총괄하는 당 통일전선부장에 임명했다. 전임 통전부장이었던 김영철과 함께 대남 강경파로 분류된 인물이다. 리선권은 남측을 향한 거친 언사로도 유명하다. 지난 2018년 옥류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방북한 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말했고, 회의장에 3분 늦게 도착한 조명균 당시 통일부 장관이 “고장 난 시계 때문”이라고 하자 “시계도 주인을 닮아서 저렇게…”라고 했다. 방북한 김태년 민주당 의원을 소개받은 자리에선 “배 나온 사람한테 예산 맡기면 안 된다”고 했다. 이처럼 막말 퍼레이드의 주인공인 리선권은 김정은 시대 들어 20 차례 이상 대남 접촉에 얼굴을 내민 인물이다.

이제 리선권의 대화 상대는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다. 권 장관은 “리선권 통전부장과 언제 어디서든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원래 통일부 장관의 북측 카운터 파트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지만, 북측은 지난해 대남 대화 기구인 조평통이 필요 없다고 밝혔다. 현재 대남 관계에서 북한 통전부는 암중모색 중이다. 당 전원 회의와 중앙군사위에서 대남 군사 전략 과시가 우선이라 통전부는 일단 잠수 중이다. 윤석열 정부를 향한 거친 말 폭탄은 통전부 몫이다. 북한 코로나 확산을 대북 전단 탓으로 선전하는 것도 통전부 작품이다.

한편 북한 외무상에는 최선희 제1부상(차관)이 승진 임명됐다. 정권 최초의 여성 외무상이다. 가부장제 남성 위주 사회에서 58세의 최선희 발탁은 김정은의 절대적 신임이 없으면 불가능한 인사다. 지난 2019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김정은과 푸틴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전용차에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가 동승했다. 김정은 전용차인 검은색 벤츠 리무진에서 리용호가 앞자리, 최선희가 김정은의 옆자리에서 내렸다. 최고 실세만이 가능한 차량 의전이라 언젠가는 외무상 승진을 예상했지만 그 시기가 앞당겨진 깜짝 인사다. 북한 내각 총리를 지낸 최영림의 수양딸로 몰타, 오스트리아 등에서 조기 유학한 최선희는 영어가 유창한 금수저다. 김정은 입장에서 외국 사정에 어두운 군, 관료 출신들과 최선희는 급이 다른 인물이다. 최선희가 최측근인 이유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성 김 미국 대사와 최선희는 판문점에서 7번에 걸쳐 예비 회담을 가졌다. 최선희가 평양의 훈령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아 성 김 대사는 애를 먹었다. 그녀는 싱가포르 회담을 앞둔 5월에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을 주장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해 회담이 결렬 위기를 맞기도 했다. 김정은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한 것이다. 또한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날강도 같은 요구를 했다고 비난했다.

리선권과 최선희의 등장이 대남 대외 정책에 주는 메시지는 협상보다는 강경론이다. 북한 외교에서 특정 인사의 등장이 정책 변화와 반드시 연계되지는 않지만 강대강 대결 구도를 지원하는 인사다. 김정은은 인사를 확정한 전체 회의에서 “노동당의 강대강, 정면 승부의 투쟁 원칙”을 강조하고 국권 수호를 위한 핵 무력 강화 의지를 시사했다. 대남 및 대미 외교의 경험이 축적된 두 인물이 전면에 나서 대북 제재 해제의 물꼬를 트기 위해 강온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7차 핵실험 없이 협상을 시도한다면 다양한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지난달 워싱턴 회담 기자회견에서 모두 23차례에 걸쳐 대화·외교를 언급했다. 핵실험 직전까지 간 북한을 돌려세우려는 노력인 동시에 북한이 만일 도발할 경우 최대 압박 모드로 전환하기 위한 ‘명분 쌓기’다. 김정은이 핵실험 단추를 누른다면 북한 이슈는 제재와 압박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밖에 없다. 영어가 유창한 최선희 외무상과 박진 장관이 어디서든 만나서 우리말로 한반도 비핵화 대화를 개시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