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진행되는 변화는 잘 체감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임계 수준을 넘어서면 변화는 급속하게 진행되며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자동차와 인터넷 보급이 그랬고,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그런 존재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변화 가운데 미래를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은 로봇이다. 다양한 영역에서 점점 많은 로봇이 등장하고 있다. 로봇청소기는 벌써 많은 가정에 보급됐고, 식당과 카페 등에서도 점차 로봇이 등장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멀지 않은 시기에 더 많은 로봇이 우리와 함께할 것임은 분명하다.
많은 로봇이 이미 활동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로봇은 산업 현장에서 활용되는 산업용 로봇이기 때문이다. 산업용 로봇은 세계적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산업용 로봇의 보급 수준은 노동자 1만명당 보급 대수를 가리키는 로봇 집적도로 평가되는데 2021년 국제로봇연맹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로봇 집적도는 노동자 1만명당 126대에 이르고 있다. 10년 전인 2011년 55대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2배 넘게 증가하였다. 일상생활에서 로봇은 아직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산업 현장에서 로봇은 일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2010년부터 10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높은 로봇 집적도를 기록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로봇 집적도는 932대로 세계 평균의 7.3배에 이르고 있다. 세계 2위인 싱가포르(605대)와 3위 일본(390대), 4위 독일(371대)과 비교할 때 우리의 로봇 집적도는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우리의 높은 로봇 밀도는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 산업 그리고 자동차 산업의 발전에 기인하고 있다. 전자 산업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초미세 공정 작업과 생산 과정에서의 초고속 검사를 위해 대량의 로봇이 필요하며, 자동차 산업의 경우는 숙련 인력보다는 로봇 활용도를 높이는 데 집중해 온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영자들은 로봇 도입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임금과 노동 조건을 둘러싼 갈등을 피하려고 로봇 활용을 선호하는 것이다. 초기에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되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인력의 숙련과 노하우에 의존하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고령화와 인력 감소 등의 문제를 극복하면서 제조업 부문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로봇의 이용과 활용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로봇도 진화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로봇은 오랫동안 인간과 격리된 별도의 공간에서 특정 작업을 하는 존재였고, 로봇이 하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은 엄격하게 구분되었다. 로봇의 빠른 속도와 강력한 힘은 역설적으로 인간에게는 위험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산업용 로봇은 안전을 이유로 울타리로 격리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간과 로봇이 함께 작업하는 협동 로봇이 보급되고 있다. 작업자에게 물건을 건네주거나 함께 조립하는 등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또한 특정 작업에 국한되었던 로봇이 프로그래밍을 통해 유연하게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활용해 자체적인 판단을 통해 상황 변화에 대처할 뿐만 아니라 로봇끼리의 협업도 진행되고 있다. 우리에게 잘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로봇은 미래의 주인공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대량의 산업용 로봇을 사용하지만 정작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은 일본과 독일 업체가 주도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화낙(FANUC)은 세계 1위 산업용 로봇 업체이며 가와사키, 야스카와 등 다수의 업체가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독일 역시 세계 3위의 쿠카(KUKA)를 비롯해 로봇과 관련한 다수의 업체가 존재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로봇 산업 경쟁력은 미국, 일본, 중국, 독일, 스위스 등 주요 6국 가운데 중국보다도 뒤진 6위로 나타났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감속기, 서보모터 등 핵심 부품의 일본 의존도가 매우 높으며, 점차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소프트웨어의 경우 인력 부족으로 수요처의 요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인 것이다.
로봇 산업은 특정 영역의 산업이라기보다는 소프트웨어와 각종 하드웨어가 결합된 종합적 산업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 다른 영역의 융합과 상호 협력에 매우 취약한 경향이 있는데 로봇 산업에서도 역시 그런 경향은 분명하다. 유압과 모터로 움직이는 기계장치에서 각종 센서와 인공지능 등이 결합된 복합체로 진화하는 로봇의 발전은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로봇과 관련한 교육과 연구는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에서 활용되는 장비와 기자재는 산업 현장의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경쟁국은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고가 로봇과 센서 등을 직접 교육하고 연구 과정에서 활용하면서 교육의 수준을 높이고 미래의 과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키우고 있는 반면, 우리는 저가의 모터 조립 및 초보적 수준의 로봇 조립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정부 역시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로봇 연구·개발, 테스트베드, 사업화 지원 등 전체 과정을 지원하는 국가로봇테스트필드를 2023년부터 2029년까지 예산 3000억원을 들여 대구 테크노폴리스에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업의 성공 여부는 고가 장비 확보보다는 장비를 운용·관리하며, 사용자들에게 교육을 상시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테크니션을 제대로 확보하는지에 달려 있지만 기존의 사례들을 보면 과연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이다.
미래의 주역이 될 로봇은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와 적응을 요구하고 있다. 기술과 인력에 대한 투자와 더불어 관련 제도의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직면한 우리에게 로봇 친화적인 사회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