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배우자 질 바이든은 백악관 입성 후에도 여전히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유급 작문교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역사에서 퍼스트 레이디가 남편의 임기 중에 백악관 밖에서 돈을 버는 첫 영부인이다.

그러자 칠레의 퍼스트 레이디이자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페미니스트 활동가이기도 한 카라마노스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재단 운영을 비롯한 영부인의 의무를 정부 부처로 전격 이관한다는 폭탄선언을 하며 영부인 개인의 자주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올해 서른세 살의 카라마노스는 보리치 칠레 대통령의 여자 친구다.

‘퍼스트 레이디’라는 호칭은 1877년 뉴욕의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19대 미국 대통령 러더퍼드 헤이스의 취임식 기사에서 이 말을 사용하면서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선출되지도 않았고 법적인 규정으로 보장받는 자리가 아님에도 외교나 내정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어쩌면 애매한 권력이다.

철저한 내조형 영부인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재클린 케네디 이후 미국 퍼스트 레이디의 역사를 바꾼 인물은 아무래도 미셸 오바마가 될 것이다. 시카고 사우스사이드의 흑인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프린스턴과 하버드를 나와 변호사가 된 미셸은 두 딸의 독박 육아와 변호사 생활을 병행하면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백악관 입성이라는 신화를 완성했다.

미셸은 명연설로,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저서로, 그리고 래퍼가 되기를 서슴치 않는 다양한 캠페인의 중심 인물로 가장 미래지향적인 퍼스트 레이디 상을 만들어내었다. 역대 대통령들의 지지율 평균치를 훌쩍 뛰어넘는 업적을 지닌 버락 오바마지만 미셸의 인기는 언제나 남편보다 10%에서 많게는 20% 이상 높았다. 하다못해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도 버락보다 훨씬 많다.

우리 돈 4만원 정도인 저가 브랜드의 옷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것으로도 유명한 미셸이 2016년 발표한 이 노래는 자신의 두 딸들에게 보내는 노래이면서 세상의 모든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걸스 파워의 메시지이다. 백악관을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아이들의 건강한 식단을 위해 식품산업 자본과 싸웠던 그가 힐러리가 해내지 못했던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