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도록 정밀한 정물화다. 멀리서 보면 실제로 벽에 벽감(壁龕)이 뚫려 있고 그 안에 해골과 성배가 놓인 줄 알 것이다. 부드러운 음영이 완벽한 깊이감을 자아내고, 벽감 표면의 미세한 균열과 작게 파인 자국이 뚜렷하며, 메마른 해골과 묵직한 황금 성배의 서로 다른 질감을 만져질 듯 그려낸 대가의 손이 놀랍다. 화가는 바로 15세기 플랑드르 최고의 화가였던 한스 멤링(Hans Memling·1440~1494)이다. 이들은 두 개의 패널이 맞붙은 제단화의 뒷면으로, 앞면에는 각각 세례 요한과 성녀 베로니카의 초상이 있다.
해골은 자명한 죽음의 상징이다. 뱀과 성배는 예수가 아끼던 사도이자 요한복음을 썼다고 전해지는 복음 성자 요한의 생애를 기록한 ‘요한행전’에서 유래했다. 예수 승천 이후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요한이 독이 든 와인을 마시라는 명을 받았다. 앞서 같은 와인을 마신 이들은 죽음을 면치 못했으나, 요한이 잔에 축성을 하자 와인에서 독이 빠져나가 그는 이를 다 마시고도 죽지 않았다. 그림 속 뱀은 성배에서 빠져나가는 독의 상징인 것이다. 물론 기독교에서 뱀이란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도록 아담과 이브를 유혹해 원죄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악을 뜻한다. 요한이 성배에서 뱀을 몰아낸 건 성인이 사악하고도 치명적인 유혹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구원을 받아 죽음과 파멸을 피했다는 의미다.
두 폭의 그림은 언젠가 따로 떨어져서 지금은 서로 다른 곳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니 이 둘을 이렇게 나란히 붙여서 볼 기회는 거의 없다. 하지만 멤링의 성배와 해골은 이처럼 삶과 죽음, 선과 악, 믿음과 죄악, 구원과 타락이 서로 바짝 붙어있어 사실은 떼어내기 어렵다는 걸 되새겨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