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책들이 가는 천국이 있다면 아마도 이렇게 생겼을 것이다. 스위스 북동부 장크트갈렌의 수도원 부속 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로 손꼽힌다. 물결치듯 탄력 있는 곡선의 목조 난간이 공간 전체를 감싸고, 천장은 마치 화려한 꽃나무와 함께 자라난 듯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화려하기는 하나 장엄하다기보다는 아늑하고, 지극히 장식적이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섬세하다. 이처럼 18세기 중반 로코코 양식에 따라 도서관을 개축한 건 건축가 페터 툼(Peter Thumb·1681~1766), 화가 요제프 바넨마커(Joseph Wannenmacher·1722~1780), 소목장 가브리엘 로저(Gabriel Loser·1701~1785)였다. 당시 만들어진 입구 위 현판에는 ‘영혼의 치유처’라고 쓰여있다.
그러나 다만 건물이 아름다워서 책의 천국이라는 건 아니다. 이 자리에 도서관이 생긴 건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크트갈렌은 7세기에 아일랜드 수도사 성(聖)갈루스가 은거하던 곳에 형성된 도시다. 720년, 수도사 오트마르가 성갈루스의 옛 은둔처에 수도원을 세우고, 카롤링거 왕조의 비호를 받으며 성당, 필사실, 도서관을 증축해, 각지의 학자들을 끌어모으며 유럽 학문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인쇄술이 없던 시절, 학문의 시작은 필사(筆寫)였다. 현재 이 도서관 장서 17만 권 중, 1000년이 넘은 필사본만 400권이 넘는다.
1000년 이상 책을 지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도서관은 937년 수도원을 다 태운 화재에서 살아남았다.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과 함께 성상 파괴 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장서만큼은 끝까지 지켜냈다. 책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니 여기가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