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총선거가 치러졌다. 원래 예정된 날짜는 5월 9일이었는데 하루 연기되었다. 일식 때문이었다. 태양의 99% 이상을 가리는 금환일식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두고 급히 하루를 연기한 것이다. 일식은 천문 현상에 불과했지만, 당시만 해도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좌우 대립의 정치적 혼란까지 겹치며 처음 경험하는 민주적인 절차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은 상당했다. 이처럼 과학적으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들이 정치와 연관되곤 하는데, 여기엔 꽤 오랜 역사가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제노바의 선거 방식은 특이했다. 자격 있는 후보 90명 중 5명을 제비뽑기로 추첨해 의원으로 선출했다. 공정성으로만 따지면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었다. 선거 과정에 잡음도 없었고 과열 경쟁도 없었다. 그런데 이 선거 제도가 전혀 생각지 못한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지금도 그렇지만 선거에서 누가 권력을 잡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기에 사람들은 추첨된 5명이 누구일지 내기를 시작했다. 공정한 게임이라 과학적인 계산이 가능했고, 내기에 건 돈에 따라 받을 당첨금을 정할 수 있었다. 처음엔 정치적인 이벤트였지만, 사람들은 의원 당선자가 누굴지보다 상금을 누가 탈지에 더 몰두했다.
17세기에 이르자 아예 선거와 아무 관련 없이 그냥 베팅만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이를 구현하는 과학적인 도구도 개발했다. 1부터 90까지 번호를 새긴 같은 크기의 공을 통에 넣고 바퀴를 돌려 5개의 공을 무작위로 추출했다. 제노바 시민들은 사전에 숫자를 베팅하고 추출된 공의 숫자가 몇 개 일치하는지에 따라 약속된 상금을 받았다. 오랜 기간 증명된 선거의 공정성이 게임의 신뢰도를 올렸다. 이 새로운 유흥은 인기를 끌어 주변 이탈리아 도시들로 퍼져 갔다. 이제 정치나 선거는 까맣게 잊혔고, 대신 확률과 통계의 과학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로또라고 부르는 복권의 시작이다.
이처럼 로또는 공정한 선거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며 탄생했다. 이렇게 역사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복권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만든 것은 카사노바였다. 1757년 프랑스 왕실이 재정 부족으로 고민하자 애정 행각으로 유명한 카사노바가 제노바식 로또를 제안한다. 하지만 당시 복권으로 국가 재정을 확보하려다 실패한 사례가 많았기에 왕실은 주저했고, 과학자들의 제안으로 정책 타당성을 검토하는 공청회가 열렸다. 정치 이슈를 덮어버리는 로또의 과학을 믿었던 카사노바는 이 자리에서 당국자들을 설득하며 마침내 복권이 국가사업으로 추진된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1758년 시작된 카사노바 복권으로 프랑스에 로또 광풍이 불었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었지만, 복권 추첨은 중단되지 않았고, 국왕이 폐위되고 공화정이 선포되며 1793년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순간에도 복권 추첨은 거르지 않았다. 역사상 최고의 정치적 혼란기였지만 로또 구매는 멈추지 않았다. 평민도 정치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길이 열렸듯이, 로또는 가난한 자들에게 희망이었다. 복권은 봉건 왕정의 재정을 뒷받침하던 구질서의 상징이었지만, 왕조를 무너뜨린 혁명 정부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든든한 수입원이었다.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추첨의 공정성과 로또의 과학에 의문을 제기했다. 수학자 라플라스는 이러한 문제 제기가 확률에 대한 과학적 논란이 아니라고 보았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확률에 걸린 과도한 상금은 환상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고, 이런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복권은 불공정한 세금이라고 맹비난했다. 진정 과학자가 해야 할 일은 과학적으로는 공정하다고만 외칠 게 아니라, 과학의 이름 뒤에 숨어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고 있는 정치권력의 윤리 문제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결국 프랑스는 1836년 국가 복권 사업을 폐지했다.
그렇다면 정말 로또는 과학적으로 공정했을까? 통계학의 대가 미국 시카고 대학의 스티븐 스티글러 교수는 무려 70여 년간 계속된 카사노바 복권 결과를 분석하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1부터 90까지 적힌 구슬 90개가 추첨된 빈도수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니 90개의 번호는 매우 고르게 추첨이 되었다. 즉, 추첨은 공정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베팅한 숫자는 전혀 고르지 않았고, 90개의 숫자 중에 몇 개의 숫자에 집중되었다. 모두 보나파르트 나폴레옹과 관련된 숫자였다. 공정한 정치를 위한 과학이 로또였지만, 정치에 대한 기대는 과학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과학적이지 않은 사실에도 굳이 배경을 상상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더 나은 삶을 열망하기에 정치에 더욱 이런 기대가 투영되었을 것이다. 라플라스가 지적했듯이 인간의 속성이 그렇다면 과학의 역할은 더 깊이 인간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1948년 5월 9일 전국에서 일식 관측 행사가 진행되었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미국 여키스 천문대(Yerkes Observatory) 관측대가 입국하며 분위기를 한껏 올렸고, 이에 서울대 문리대 학장 이태규와 물리학 교수 권영성도 관측대를 꾸려 합류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일식을 피해 5월 10일로 미뤄진 총선거에 무려 95% 넘게 참여했고, 이렇게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되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