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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살세도, 십볼렛, 2007년,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설치 장면.

2007년 10월 9일,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콜롬비아 미술가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1958~)의 ‘십볼렛’을 공개했다. 그녀의 작품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아니면 대지진이 강타한 듯, 금이 가서 쩍 벌어진 건물 바닥이었다. 사전 정보 없이 발을 들인 관람객이라면 충격적인 광경에 입을 쩍 벌린 채 멈춰 섰을 것이다.

이 건물은 원래 화력발전소였는데, 미술관으로 개축하면서 터빈이 있던 공간을 그대로 비워 높이 35미터, 길이 155미터, 폭 2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전시실, ‘터빈홀’로 만들었다. 살세도는 미술관 입구이기도 한 터빈홀 입구에서부터 완만한 경사를 따라 내려가다 두 갈래로 갈라져 전시장 끝까지 이어진 길고 큰 균열을 만들었다. 처음에 가늘었던 틈은 전시장 깊숙이 들어갈수록 점점 넓어지고 깊어져 끝에서는 다리 한 짝이 쑥 빠질 수 있을 정도로 벌어졌다. 실제로 관람객 중 발이 빠져 다친 이들이 있었고, 다치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큰 틈새가 건물 전체 안전을 위협하는 건 아닌지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었다. 어디든 갈라지고 벌어진 틈은 아무리 미세하더라도 언제든 구조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위협이 되지 않는가.

‘십볼렛’이라는 제목은 구약성서에서 유래했다. 같은 민족의 다른 지파(支派)끼리 전쟁을 한 뒤, 이긴 자들이 패잔병을 구별하기 위해 ‘십볼렛’을 발음해보라 하고, 자기들과 다르게 발음하면 모두 죽였는데 그렇게 학살한 이의 숫자가 4만이 넘었다는 것. 콜롬비아 출신으로 유럽에서 차별과 고립을 경험했던 살세도는 런던 한복판에 금을 긋고 ‘균열’이라는 게 얼마나 두렵고 불길한가를 체험케 했다. 수개월의 전시가 끝난 뒤 ‘십볼렛’의 틈은 콘크리트로 다시 메워졌지만, 아직도 흔적은 그 자리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