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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4일 울산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이른 아침부터 모든 도크가 건조 중인 선박들로 가득 찬 채 선박 제조 공정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극심한 불황을 겪었던 조선업은 모처럼 호황을 맞아 국내 조선소는 3년 치 주문이 밀려있다./오종찬 기자

지난 2월 미국의 카를로스 델 토로 해군부 장관이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와 한화오션 거제 사업장을 방문해 함정 건조와 유지·보수·정비(MRO) 역량을 확인했다. 미국 해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흔들림 없이 세계 최강 지위를 유지해왔지만 중국 해군이 급속도로 전력 확대를 추진하면서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 중국 해군은 세계 선박 건조 능력의 50%를 보유하고 자국 조선 역량을 활용해 현재 370척인 전투함 보유 규모를 2030년까지 440척으로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의 조선 역량은 세계 시장 점유율 0.13%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폭적 전력 확대는 고사하고 290여 척 현상 유지도 벅찬 실정이다. 미 해군으로서는 동맹국인 한국의 조선 역량을 활용해 전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24년 1분기 우리나라 선박 수주액이 약 136억달러를 기록해 중국을 앞질러 세계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 선박 수주액이 1위를 달성한 것은 2021년 4분기 이후 3년 만의 일이다. 1분기에 발주된 LNG 운반선(29척)과 암모니아선(20척) 모두를 우리가 수주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새로 발주되는 선박 가격을 지수화한 신조선가 지수도 2023년 2월 183.2를 기록했는데 2008년 8월 191을 기록한 이후 180을 넘은 것은 15년 만이다. 수주 물량 확대에 선가 회복이 겹치면서 삼성중공업은 2014년 이후 9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폐업과 구조조정이 이어지던 조선업이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고 훈풍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업의 부활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마냥 미래가 밝지는 않다. 대한민국 조선업의 장점은 조선업과 관련된 각종 업종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클러스터를 형성하면서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화된 불황을 거치면서 부산을 중심으로 분포한 많은 조선 기자재 업체가 폐업하거나 생산 역량을 축소했기 때문에 늘어나는 수요를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 클러스터를 떠받치고 있던 기초가 약해진 상태인 것이다. 이에 따라 납기 준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선박 건조의 핵심인 블록을 중국에서 수입하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그래픽=이철원

조선업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인력난이다. 불황을 거치면서 상당수 인력이 타 산업 또는 수도권으로 향했는데 이들이 조선소로 돌아가고 있지 않는 것이다. 임금을 올려주면 된다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이제 흑자로 전환하기 시작한 업체로서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양호한 선가로 최근 수주한 선박의 수주 대금은 2~3년 후에나 들어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청년층의 지방 근무 기피 경향이 강해지면서 최근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인력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조선업계 전체 인력의 16%인 1만5500명이 외국인이다. 2023년 1분기부터 3분기까지 신규로 고용한 인력이 총 1만4359명인데 이 가운데 내국인은 2020명(14%)에 불과하다. HD현대중공업은 울산 조선소와 현대미포조선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2023년 말 기준 5210명으로 2022년 말 2460명과 비교해보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거제는 1년 사이에 외국인 근로자가 4265명 늘어 총 6977명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95.9%가 한화오션(3123명)과 삼성중공업(3568명)에서 근무하고 있다. 현대 삼호중공업이 있는 전남 영암군은 외국인 인력이 전체 인구의 18.4%에 해당하는 9657명 활동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조선업 및 관련 업체에서 일한다.

사실 조선업 인력 문제는 우리나라만 겪는 것은 아니다. 일본도 조선업 전체적으로 구직자 수에 대한 구인 수의 비율을 의미하는 유효 구인 배율이 2.5에 이르고 있으며, 도장·철공 같은 직종은 4배 이상에 이르는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19년부터 조선업에 대해서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 체류 기간 제한 없이 가족과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하며, 동일 직종에 한해 자유로운 전직도 허용함으로써 인력 확보를 지원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를 저렴한 인력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탈피하여 외국인 인력을 ‘육성’하고 이들과 ‘공생’하는 사회로 전환하는 분위기를 이끌어내 일본 산업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근본적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일본 조선업 유지와 경쟁력 강화의 핵심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업의 외국 인력 확대에 많은 이는 우려를 표하지만 현재 조선업이 걷고 있는 길이 결국 우리나라의 다른 산업 분야도 따라가야 하는 길임은 분명하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조선업 분야에서 장기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갖춰 외국인 근로자의 숙련도를 높이고 조선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선업계의 시도는 조선업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산업의 미래 경쟁력 유지를 위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1973년 1월 12일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중화학공업화를 선언한 지 50년이 지났다. 가진 것은 없지만 노동력이 풍부했던 대한민국은 돈은 많지만 노동력이 부족한 국가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했기에 대한민국의 조선업은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2023년 제20회 조선해양의 날 기념식에서는 두 외국인 근로자가 ‘우수조선해양인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시상식에 참가했다. 지난 3월 27일에는 HD현대중공업이 영빈관에 외국인 근로자 42명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무엇이 중요하고 필요한지 기업들은 이미 알고 있다. 국제 안보 협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조선업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변화시켜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