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cel
Cancel
live

흑백요리사.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봤어?”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 엄청난 인기다. 넷플릭스 비영어 부문 TV 시리즈 글로벌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비드라마 화제성 조사에서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중에서 1위에 올랐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출연한 셰프들의 맛집 메뉴와 가격, 특장점까지 담은 지도가 줄줄이 올라온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지도 서비스에 ‘흑백요리사 출연 셰프 식당’ 리스트를 신설했다. 생존한 요리사뿐 아니라 탈락한 요리사들의 식당에도 오픈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서거나 ‘재료 소진으로 조기 마감합니다’라는 안내문이 입구에 붙고 있다.

요리 그리고 서바이벌 오디션은 진부한 소재와 포맷이다. 그럼에도 흑백요리사가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요리 프로라면 뻔해서 외면했지만 흑백요리사는 챙겨 본다는 요리사가 해준 말에서 비결을 찾을 수 있었다. “요리만 나오잖아요.”

그동안 서바이벌 프로들은 흥행 장치로 ‘스토리텔링’과 ‘성장 서사’를 사용했다. 가정사, 집안 환경 등 출연자 개개인의 성장 과정이나 어려움을 집중 조명했다. 시청자들은 출연자의 스토리에 감정 이입했고, 성공을 바라고 지지하며 팬이 됐다.

아이돌그룹 멤버의 사생 팬 또는 특정 정치인의 극단적 지지자들처럼, 이들은 실력과 관계없이 몰표를 주었다. 더 강력한 팬덤을 가진 출연자가 더 뛰어난 상대를 누르고 우승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과 결과에 실망하고 피로감 느끼는 이들이 많았고, 요리 서바이벌 프로의 몰락 원인이 됐다.

흑백요리사에는 출연자 개인의 스토리텔링과 성장 서사가 없다. 생존과 탈락은 오로지 맛으로 가려진다. 요리라는 본질에만 집중했다. 심지어 ‘백수저 요리사’ 20명과 ‘흑수저 요리사’ 20명이 1대1로 맞붙는 2차 대결은 ‘블라인드 심사’로 진행됐다. 두 심사위원 백종원과 안성재(미쉐린 스리스타 레스토랑 ‘모수’ 오너셰프)는 눈을 안대로 가렸다. 조리 과정도, 완성된 음식도 보지 않고 맛으로만 평가했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요리 서바이벌 프로 우승, 미쉐린 스타 획득 등 높은 명성과 인지도를 가진 ‘백수저 셰프’ 20명에게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 80명이 도전하는 계급 간 대결 구도로 긴장감을 더하려 했다. 하지만 흑수저 셰프 상당수는 백수저 셰프보다 지명도에서 밀린다고 말하기 힘들다. TV보다 유튜브를 훨씬 더 많이 보는 요즘, 구독자 140만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 ‘승우아빠’를 운영하는 목진화씨가 과연 백수저 요리사들보다 덜 유명할까.

백수저로 분류된 요리사들은 부전승으로 2차전에 진출하는 혜택을 받은 반면, 흑수저 요리사 80명 중 25%인 20명만이 1차 대결을 통과해 2차 대결에 나섰다. 물론 2차전부터는 계급 구도도 사라진다. 진정한 맛의 승부가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흑백 구분 없이 대결했다면, 더욱 신선하고 맛있는 프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