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그 윌리처 '더 와이프'

나는 그런 아내였다. 처음에는 그 역할이 좋았고, 그 역할이 지닌, 어째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그 역할이 지니고 있는 힘을 파악했다. 여기 유용한 팁이 있다. 당신이 어떤 중요한 사람에게 다가가기를 원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그의 아내의 환심을 사는 것이다. 밤에 잠들기 전 침대에서, 아내는 살며시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의 남편에게 당신의 좋은 점을 말해줄 수 있다. 곧 당신은 그 중요한 사람의 집에 초대될 것이다.

-메그 월리처 ‘더 와이프’ 중에서


조는 세계적인 소설가였고 그의 아내 조안은 남편의 그림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조의 이름으로 출간되는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될 때마다 보람을 느꼈고, 유명 작가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아내라는 자리는 세상과 남편을 잇는 문이었고 열쇠였다. 조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 그에게 인정받고 싶은 작가들은 조안을 통해야 그 목적을 쉽게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작지만 특별한 권력을 그녀도 한껏 즐겼다.

그런데 왜일까. 조가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게 되자 조안의 마음은 요동친다. 뛰어난 글쓰기 재능을 뒤에 감추고 지금의 남편을 만든 건 조안이었다. 그러나 명성과 인기는 오롯이 조의 몫이었고 외도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흥분으로 들떠 있는 조와 달리 시상식이 열리는 도시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조안은 마음을 굳힌다. 그가 상을 받고 나면 이혼하리라. 2003년에 발표되어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은 예순네 살의 아내가 문단의 최고 권력을 손에 넣은 남편을 떠나 자기만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하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성공한 남편의 아내로 살아가는 행복이 아무리 크다 해도 자기 이름으로 우뚝 서고 싶은 욕망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내조하는 아내에 대한 환상과 미련을 버리지 못했으면서도 유명인의 배우자라는 자리를 언제나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내조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강조된다 해도 제 힘으로 얻지 않은 이익에 대해 사회가 냉정하고 엄격하게 반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자기 이름으로 더 크고 싶은 자아 성취 욕구와 남편을 더 빛나게 하는 지혜로운 아내의 역할, 그 접점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유명인의 아내로 사는 여성들의 어려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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