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보는 도시는 늘 즐거운 축제다. 요즘은 소셜미디어가 더 그렇게 만든다. 하지만 진실도 그럴까.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관광 선진국을 보면 하나같이 지역 작은 마을이 더 아름답고, 콘텐츠도 다양하다. 그들의 멋과 가치 기준은 뭘까. 시골의 문화, 지역의 축제, 토속 건축과 예술, 로드 트립, 향토 음식 등 ‘시골의 맛’ 연재를 시작한다.
[1] 이탈리아 ‘파세지아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단어인 파세지아타(Passeggiata). 이탈리아에서 가족, 친구들과 저녁 시간에 동네를 걷는 관습이다. ‘걷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파세지아레(passeggiare)’, 길을 뜻하는 영어 ‘패시지(passage)’와 같은 어원이다. 이탈리아 전역의 문화지만 남부에서 좀 더 보편적이다. 평일에는 오후 5시쯤 시작해서 8시 정도까지, 일요일에는 미사를 마친 오후에 한두 시간 동안 이어진다. 해가 긴 여름날이면 시간이 좀 더 늘어난다. 달콤한 시에스타(siesta) 이후 가장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시작되는, 저녁 식사 전의 산책이다.
파세지아타 동안 사람들은 마을을 천천히 걸으며 친구들을 만나고, 골목에서 대화를 하고 동네 뉴스나 소문을 주워듣는다. 상점들을 윈도쇼핑 하고, 카페에서 젤라토를 먹거나 커피, 식전주를 마신다. 저녁거리 장을 보는 것도 이때다. 직장인은 퇴근하자마자 옷을 바꾸어 입고 서둘러 참여한다. 온 세대가 어울리지만 돋보이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남녀들이다.
걷다가 만나는 동네 친구들과 즉석에서 저녁 약속을 만드는 경우도 생긴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유모차에 싣고 동네 사람들에게 선보인다. 반려견도 동행함은 물론이다. 주말에는 성당 미사 후에 가족 전체가 함께한다. 노인들은 약간의 걸음 후 벤치에 앉아서 이 모습을 보며 즐긴다. 상점 주인들도 참여하기 위해서 가게 앞에 의자를 놓고 행인들을 구경한다. 그러다가 손님이 오면 얼른 안으로 들어가 응대한다. 그야말로 세대가 어울리고 지역사회가 모두 함께하는 멋진 시간이다.
아주 작은 마을, 또는 반대로 대도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파세지아타에 참여하려고 한두 시간을 운전해서 근처의 멋진 언덕 마을이나 해안 마을을 찾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오래된 마을 중심가는 차량 출입이 제한되어 걷기에 안전하고 편안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사람들은 골목을 돌아다니며 걷다가 ‘일코르소(il corso)’라 불리는 메인 도로나 광장에 모인다. 해안 도시의 경우 바닷가 산책로가 광장 역할을 한다. 평소에 늘 걷는 길이지만 이때는 특별하다. 걸음의 질(質)도 다르다. 이 걸음에는 바쁨이 없고 목적지도 없다. 그래서 부드럽고 천천히 걷는 것이 핵심이다.
파세지아타의 핵심은 멋진 경관, 멋진 그림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보고 보이는 것,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패션이다. 좋은 인상을 준다는 뜻의 ‘파레 라 벨라 피구라(fare la bella figura)’라는 이탈리아어 표현처럼 멋지게 잘 꾸미는 것은 필수다. 그래서 옷을 잘 입고 치장을 한다. 하지만 요란하지 않다. 유명 브랜드를 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파세지아타는 첨단 패션을 자랑하고 관찰하는 시점이면서 동시에 새 애인, 새 아기, 새 옷을 소개하는 무대다. 그래서 유모차의 아기도 옷을 예쁘게 입힌다. 작은 마을인 경우 같은 길을 따라 동네를 두세 바퀴 반복해서 걷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면 집에 들러 다른 옷으로 갈아입기도 한다. 패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예다. 그래서 이탈리아 수백 개 마을의 골목은 매일 저녁 패션쇼의 런웨이가 된다.
파세지아타는 자기 마을 사람들의 리이프스타일을 보여주고 자랑하며, 동시에 부러움을 사는 사회적 의식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와 지역사회에서도 도입하고 싶어 한다. 이탈리아처럼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와 유사한 형태의 산책을 스페인과 남미에서 ‘파세오(paseo)’, 그리스에서는 ‘볼타(volta)’라고 부른다. 그야말로 도심의 공간과 패션, 그리고 ‘라 돌체 비타(La Dolce Vita)의 라이프스타일을 모두 포함한 문화다. 거기엔 친목과 여유, 그리고 ‘인시에메(insieme)’라고 표현되는 ‘어울림’이 있다. 그 핵심은 소속감이다. 지역사회에 대한 소속감, 마을에 대한 소속감, 그리고 역사와 전통에 대한 소속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저녁은 무척 중요하다. 식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녁 전체의 시간이 소중하다. 이들에게 스타일이란 옷 잘 입고 맛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포함한다. 이를 위해서 매일매일 잘 차려입고 친구를 만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이 의식이 아름다운 이유는 패션이 멋져서만은 아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파세지아타의 진정한 매력은 경관, 또는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닌 ‘대화’에 있다“고 이야기했다. 파세지아타 중에는 공손한 언어를 사용하고 덕담을 나눈다. 하루의 가장 기분 좋은 시간, 이 멋진 공연을 망칠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은이들도 어른들과 어울리면서 그런 예의를 배운다. 핵심은 극도의 소박함과 단순함이다. 석양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부드러운 그림자가 지는 황혼 무렵이면 이탈리아 마을의 공기가 달라진다. 이들의 인생 찬가 파세지아타의 마법을 준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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