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김창완의 첫 솔로 앨범 ‘기타가 있는 수필’은 1983년에 나왔을 때 단신 정도로만 짧게 다뤄졌다. 하지만 15년 뒤에 복각 버전을 내놓았을 때는 굵직한 기사가 여러 건 실렸다. 그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평가가 높아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록 그룹 산울림보다 연예인 김창완이 더 유명해진 시기와 맞물린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통기타에 목소리만 나오는 소박한 앨범이지만 일부 곡에선 파격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내 방을 흰색으로 칠해 주오’는 가요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주제인 죽음에 대해 노래했다. 시간의 고동 소리가 멈추면 돌덩이 같은 슬픔이 꽃으로 변하고 한없이 편해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꿈’은 내레이션으로 가사를 읊은 곡이다. 공주와 왕자의 사랑을 지켜보던 백성이 샘을 내는 이야기를 어른의 동화 구연처럼 책 읽듯 편안히 읊조린다. 42년 지난 지금도 말하기를 중심에 놓는 곡은 가끔씩만 발표된다. 시대를 앞서갔다.
무엇보다 독특했던 것은 시어로 정제된 말들이 가사로 대접받던 시대에 일상적 말투를 구어체로 편안하게 서술했다는 것이다. 산울림의 음악을 돋보이게 했던 강점이 솔로 작품인 이 앨범에서도 빛을 발했다. ‘어머니는 고등어를 절여 놓고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이를 먹을 수 있네’라고 노래하는 ‘어머니와 고등어’는 그런 면에서 특히 파격적이다. 김창완의 가사를 천재적이라 호평하는 이유는 이처럼 의외성의 강도가 높은 구간이 많다는 점일 것이다. 예상 범위를 벗어나면서도 좋을 때 감탄을 넘어 신선하다는 평이 따라붙는다. 김창완의 가사는 당대에도 참신했으며 지금 들어도 별세계다.
지난 7일에 ‘기타가 있는 수필’ 수록곡 ‘초야’가 리메이크되어 발표됐다. 한때 김예림으로 활동한 후배 가수 림킴이 새로운 버전의 주인공이다. 김창완도 듀엣으로 함께했다. 성별 다른 신세대 뮤지션과 자신의 고전을 함께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아이유와 함께 불러 크게 히트한 ‘너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신구 세대가 하나가 되는 모습이 훈훈하고 아름답다.
‘초야’는 듣기에 쉬운 곡은 아니다. 하이라이트 멜로디에 변화구가 강해 화룡점정이어야 할 구간에 기이함이 끼어든다. 1983년에 이런 난해함을 시도한 김창완도 대단하지만, 굳이 그 곡을 선택해 리메이크한 림킴 또한 재미있는 아티스트다. 림킴은 한때 편안한 포크와 발라드를 들려줬지만 개명 이후엔 인지도 높은 가수들이 거의 시도하지 않는 실험적 음악에 힘을 쏟아 대담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리메이크라는 얼핏 평범해 보이는 행보에서도 그 패기는 여전하다. 김창완의 4차원 DNA를 충실히 이어받은 후배의 리메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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