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19 평양 선언’ 6주년 기념식장에서 지난 정권의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이가 기념사를 하던 중 “통일, 하지 말자”고,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의 영토 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하자”고, 급기야 “통일 논의를 완전히 봉인(封印)하자”고까지 말했다.
그는 남‘조선’ 좌파 통일 운동의 아이콘이었고 그게 그의 정치적 자산이었다. 만약 ‘통일’을 기독교 신앙에 비유한다면, 사도 바울이 이슬람교 시아파로 개종한 셈이다. 그를 미워하던 사람들은 그가 2023년 말 통일 거부 선언을 한 김정은의 교시를 받든 거라며 더욱 미워했고, 그를 좋아하던 사람들 중 상당수마저 ‘통일 포기? 에이, 그건 아니지’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가 북한의 뜻을 따라 신념을 바꿨다고 느끼지 않았다. 껍데기로는 북한을 위하는 것 같지만, ‘최소한 결과적으로는’ 중국에 득이 되는 돌변으로 여겼다.
한반도 통일국가 성립을 가장 싫어하는 게 중국이다.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든, 북한이 남한을 흡수하든, 제3의 방법으로든 마찬가지다. 접경(接境)의 강대국 탄생을 방해하는 게 국제 정치의 기본이다. 체제가 다른 경우는 더 그렇다. 1949년 10월 1일에 건국된 중화인민공화국이 불과 1년 뒤 6·25전쟁에 참전한 ‘근본’ 이유(이념 이전에 국가 생존 문제)다. 전 미 국무부 장관 마이크 폼페이오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가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2018년 3월 극비리에 방북했을 적에 김정은은 ‘중국 공산당의 위협으로부터 한반도를 지키기 위해 (남북한 어디에든) 미군이 필요하다. 중공은 한반도를 티베트나 신장 위구르처럼 다루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한반도를 통일하면 미국과 동맹까지 맺겠다는 투였다.
중국에 대한 이런 북한의 입장은 대대로 김씨 왕실(金氏王室)의 가훈(家訓)이다. ‘미국은 백 년 원수, 중국은 천 년 원수’는 북한 군사학교 슬로건이다. 트럼프에게 남북한은 원래 중국의 속국(dependent state)이라고 시진핑이 말했듯이. 한반도의 정치적, 군사적 대사건은 국제 문제가 아니었던 적이 없고, 그 관계에는 항상 중국이 있었다.
중국이 중국몽(中國夢)과 초한전(超限戰)을 전 세계에 실행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 ‘선전하는 비밀’이다. 이 빤한 사실 앞에 한국인들, 특히 4050세대는 너무 취약하다. 사실, 개종한 그의 속마음을 나 따위가 어찌 알겠는가. 그들(?)이 내로남불에 돈과 권력을 밝히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밖에는 모른다. 이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화(中國化)된 나라의 노멘클라투라(특권층)다. 신념이 바뀐 게 아니라, 욕망에 맞춰 변종(變種)된 것이다.
친일파만 매국노인가? 일본인이 격동하는 한국인 주체의 현장에 나타나 한국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현행법에 어긋나듯 이는 러시아인이든 중국인이든 예외가 아닐 것이다. 복잡할 게 없다. 친구일지라도, 위험한 선을 넘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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