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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 시작하는 동요는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로 이어져 “높으면 백두산”으로 끝났다. 아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손뼉치기나 고무줄놀이를 했다. 그런데 어른 세상에서 연관성이 없는 대상을 꾸역꾸역 이어 놓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2020년 5월에 미국의 한 인물이 사람들에게 컴퓨터 칩(chip)을 심으려 계획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러시아에서 흘러나왔다. 이러자 미국인들은 백신 옹호론자인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 칩을 백신에 넣어서 사람들 몸에 주입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미국인 28%, 공화당 지지자 40%가 이런 음모론을 믿었다. 빌 게이츠가 일찍부터 팬데믹을 우려했고 팬데믹과 백신 연구를 지원했으며, IT 전문가이자 엄청난 부자라는 사실에 러시아발 소문이 연결돼 이런 음모론이 생겼다.

지난 총선이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은 선거 직후부터 여러 형식으로 제기되었는데, 2023년 말부터 선관위 비밀번호가 단순한 12345이기에 쉽게 해킹되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나왔다. 법원에서 증거가 없다고 판결하자, 12345가 중국 공산당 정부의 민원 번호라는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총선 캠페인에서 12345를 외친 적이 있었다. 1% 출산율, 2% 물가, 3% 성장률 같은 것이었는데, 이것과 중국의 12345가 다시 연결되었다. 이렇게 중국-민주당-선관위-부정선거라는 음모론이 만들어졌다. 북한과 관련 있다는 고리도 쉽게 얻어지는데, 선관위가 시스템 운영을 위탁한 비투엔에 투자한 회사가 쌍방울 계열사고, 쌍방울의 김성태 회장이 불법 대북 송금 재판을 받는 사실을 이으면, 북한-쌍방울-비투엔-선관위-선거조작이라는 음모론이 만들어진다.

음모론은 관계가 없는 우연한 사건들을 인과관계로 바꿔서 이음으로써 만들어진다. 합리적, 과학적으로 사고하면 이런 음모론에 솔깃할 리가 없다. 그래도 이런 음모론이 그럴듯하게 들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지금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동요를 부르지는 않는지 한번 자문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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