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탈리즘(Brutalism)을 좋아한다. 1950~70년대 유행한 건축 사조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그 시절 공공건물은 다 브루탈리즘이라고 보면 된다. 2차대전 이전 건축과 비교하자면 효율적이고 기능적이다. 그 시절에는 이것이 바로 미래였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브루탈리즘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긴 게 너무 ‘잔혹하다(Brutal)’고 여긴다. 서울의 대표적 브루탈리즘 건물은 세운상가다. 역시 잔혹하다. 핵미사일도 만든다는 소문이 그냥 생긴 게 아니다. 로코코 양식 건물이라면 “디오르 가방도 만들 수 있다”는 소문이나 생겼을 것이다.
브루탈리즘은 노출 콘크리트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베통 브뤼트’(Béton Brut)에서 유래됐다. 잔혹한 건물을 짓는 사조라는 건 오해다. 영어로 ‘브루탈리스트’가 되면서 오해가 생겼다. 그래도 잘 지은 이름이다. 세운상가를 보며 브루탈하다는 말 외 다른 표현은 떠올릴 수가 없다.
브루탈리즘이 다시 인기다. 흉물로 여겨진 브루탈리즘 건물 보존 운동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오스카상 강력 후보인 ’브루탈리스트’도 한몫을 하는 중이다. 홀로코스트 생존 유대인 건축가가 미국으로 건너가 겪는 고난을 다룬 영화다. 그는 시골에 브루탈리즘 양식 교회를 지으려 한다. 너무 미래적이라 사람들은 싫어한다.
지금 브루탈리즘 건물은 과거의 것이라 모두 싫어한다. 브루탈리즘은 지난 조류다. 그 시절 아름답게 여겨진 것이 지금도 아름답지는 않다. 세운상가는 랜드마크였다. 태권V도 만들 것처럼 미래적이었다. 더는 아니다. 내가 브루탈리즘 건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살고 싶어서가 아니다. 과거의 영광을 품은 흔적이라서다. 경복궁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경회루 못에서 멱을 감고 살 수는 없다.
과거는 건축 양식과 함께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는 건물은 기어이 남아 박물관이 된다. 청와대도 박물관이 됐다. 서울역에 갈 때마다 옛 역사를 본다. 한때 “서울 놈들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며 모두 코를 움켜쥐던 압도적 권위의 건물은 소박하고 예쁜 박물관이 됐다. 코는 옆에 ‘미래적으로’ 날카롭게 유리로 지어진 신역사가 더 잘 베고 있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