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65년 2월 20일 뉴욕 할렘가 오듀본 볼룸 앞에 서 있다. 내일 저곳에서 흑인 사회혁명가 맬컴 엑스가 16발의 흉탄에 절명할 것이다. 3년 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도 총격에 사망한다. 맬컴은 타락한 흑인 민족주의 종교 단체의 흑인들이 죽였고, 킹 목사는 사악한 인종차별주의 단체 소속 백인이 죽였는데, 두 죽음 공히 배후설이 여전하다.
둘은 1964년 워싱턴 의회 입구에서 잠깐 스친 게 생의 유일한 만남이었다. 맬컴은 간디의 ‘사회주의적 변종(變種)’인 킹 목사와 달랐다. 백인과 분리된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정확한 ‘말빨’은 백인의 악마성과 모순을 흑인의 고통과 분노에 담았다. 라임이 잘 맞는 미디 템포의 정갈한 랩, 이해가 쏙쏙 되는 전위시를 듣는 거 같았다. “원수를 사랑하지 마라. 자신을 사랑하라.” 백인의 폭력에는 폭력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주장했다. 청렴하고 사생활이 깨끗했다.
당시 미국 흑인은 맬컴 엑스의 자서전을 쓴 알렉스 헤일리의 대표작 ‘뿌리’의 아프리카 노예 쿤타킨테가 현대적으로 내버려진 것에 불과했다. 이 한계 상황에서 맬컴 엑스는 두 번 거듭났다. 첫째는 강도짓으로 들어간 교도소에서였다. 이슬람교도가 되었고, 독학으로 지식인이 되었다. 언젠가 나는 미국 국적 백인 선승(禪僧)을 만났더랬다. 내게 옳고 그름에 포박되지 않고 세상을 보는 게 진리라고 말했다. 한데, 괴로움을 나직이 말했다. 희생자들을 계속 양산하는 악을 대면했을 때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거다.
맬컴은 메카 성지순례 뒤 흑인을 넘어선 인류애로 두 번째 거듭난다. 늙은 모습을 봐야 젊었을 적 진보의 진위(眞僞)를 알 수 있다면, 킹 목사와는 달리 맬컴 엑스는 진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일찍 죽어버렸기에, 그 백인 승려와 우리에게 ‘정당한 폭력’에 관한 화두(話頭)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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