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현국

매년 1월 세계 의류 산업 관계자들이 파리에 모인다. ‘파리 패션위크’로 불리는 이때 다양한 브랜드 관계자와 바이어들이 만난다. 한국에서도 수백 명 이상이 파리로 떠난다. 올해 1월 나도 그 현장에 있었다. 의류 바이어들을 만나고 쇼룸을 구경했다.

윤리 경영 인증. 그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경향이었다. 의류 산업은 기획 및 디자인 지역과 생산 지역이 멀리 떨어진 산업 중 하나다. 이런 산업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무가 강조됨에 따라 생산 현장에서의 노동 규정 준수 등을 요구받는다. 이제 거기 더해 제3 기관의 윤리 인증까지 본격화되었다. 의류 소재가 어디서 왔는지, 봉제는 어디서 누가 했는지 등의 요소에서 합격하면 인증을 받는다. 현장의 바이어는 품질이 보증된 패션 브랜드라면 으레 인증을 받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명품 업계에도 비슷한 경향이 보인다. 스위스 귀금속 제조사 쇼파드는 2015년부터 ‘페어 마인드 골드’로 만든 금시계를 출시했다. 페어 마인드 골드는 제조 현장 윤리를 준수한 금을 말한다. 채굴 중 화학물질 사용을 줄이고 아동 노동을 금하는 등의 조건이 있다. 까르띠에는 외부 업체와 계약할 때 윤리 경영 서약서를 요구한다. 고급 소비재 제조 및 유통 전 영역에서 윤리성이 강조되고 있다.

2월에는 커피 수확이 한창인 인도 카르나타카주에 다녀왔다.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인도는 생산량 세계 6위의 커피 대국이다. 인도 커피의 인지도가 낮은 이유는 품종과 인도식 커피 문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증’을 받지 못한다는 것도 한몫한다. 인도는 주로 대량생산 커피에 쓰는 로부스타종을 키운다. 커피는 맛을 즐긴다기보다는 진하게 내려 마신다. 프리미엄 커피의 기준인 ‘스페셜티 커피’ 인지도도 미약하다. 스페셜티 커피는 고품질 커피에 대한 일반명사처럼 쓰이지만 사실 이 말 자체가 미국 협회가 만든 인증의 이름이다. 인증을 얻어야 인정을 받는다.

명품과 커피 업계에서 일어나는 경향은 비슷하다. 생산 과정의 투명성 강조와 윤리 인증. 이 경향이 소비재 전 영역에 파고든다. 페어마인드 골드나 스페셜티 커피가 특정 품목 인증인 반면 전 업종을 포괄하는 인증도 있다. 미국의 비영리기관 비콥(B-corp)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체 개발한 모델로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부문 역량을 측정한다. 현재 12개 분야 9341개 업체가 비콥 인증을 받았다. 의류 부문 인증 업체는 383개. 비콥 인증을 받은 패션 브랜드는 어딘가에 반드시 표기한다.

윤리 인증의 의의는 무엇일까. 더 나은 세상 같은 예쁜 말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결국 차별화다. 어찌 보면 ‘생산 과정에서 윤리를 지키느라 원가가 높아졌으니 우리의 높은 가격을 이해해 달라’는 메시지다.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도 명확하다. 차별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소비재 생산 역량은 상향 평준화돼 변별력이 사라지는 중이다. 미국산, 독일산처럼 ‘외제’가 품질이 높던 시대는 끝났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라도 차별화해야 한다. 윤리 인증 역시 그 방법 중 하나다.

트럼프 정부 2기의 주된 경향이 이런 가식을 벗어던진 수익 창출이다. 그러나 고부가가치 소비재 영역에서의 ESG나 윤리 강조는 시대의 흐름과 관계없으리라 예상한다. 사치품이기 때문이다. 사치품 세계는 일반 소비재와 다르다. 일반 소비재는 필요해서 사지만 사치품은 홀려서 산다. 사람을 홀리는 소재는 무한하며 오늘날엔 생산 과정의 윤리까지 그 소재의 일부가 되었다. 윤리 인증을 내세운 상품을 보면 알 수 있다. 고가 의류, 고급 음료, 귀금속.

선진국 본토에는 고부가가치 제조 공장만 남아 있다. 고부가가치 상품만이 비싼 인건비 등 높은 제조 원가를 감당할 수 있어서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한국도 이런 경향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국 소비재의 제조 원가 역시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평균 임금은 2024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의 91.6%이다. 한국 패션 브랜드 중 비콥 인증을 받은 곳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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