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매일 세상에 소식이 넘쳐나는데 이제야 비로소 알았다니. 손바닥에 휴대폰을 붙여놓기라도 한 듯 인터넷에 인생을 접속하고 살던 사람들이 무슨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듯 4류 정치의 실상을 비판하고 대한민국 역사를 새삼 눈 비비고 바라본다. 대통령의 계엄에 “계몽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그랬겠는가, 야당이 그렇게까지 한 줄 몰랐다고 그들은 말하지만, 이미 다 보도되고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묻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아 몰랐을 뿐이다.
떠다니는 정보에 무심하고 무지했던 건 그동안 그들이 ‘필터 버블’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알고리즘이 날라다 주는 소식과 정보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맞춤형 거품 속에서 살면서 실상은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미디어 시대에 뉴스가 전달되지 않을 리 없다. 결국 ‘필터 버블’을 뚫고 그들에게 뉴스가 전파되는 데 계엄이라는 충격파가 주효했다는 결론이다.
2030 세대의 보수화 현상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나는 그들의 미디어 이용 행태를 우선 꼽고 싶다. 그들은 선진화된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을 뿐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인터넷이 있었던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그들은 신문도 방송도 보지 않고, 손가락 하나로 쇼핑하고 영화 보며 가상 세계에서 서로 연결되어 살아간다. 그들에게 가상 현실은 실제 현실만큼 가깝고 중요하다.
인터넷 세상에서 재미없는 뉴스는 별로 설 자리가 없다. 매년 각국 미디어 이용을 조사해 발표하는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신문 방송은 물론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모든 플랫폼에서 뉴스 소비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10명 중 4명이 ‘과도한 정보에 따른 뉴스 피로감’을 호소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뉴스를 의도적으로 거르고 피한다는 ‘선택적 뉴스 회피 경험’이 67%에 달한다.
여기에 굳이 뉴스를 읽지 않아도 뉴스가 알아서 자기를 찾아올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News-finds-me mindset)도 한몫한다. 휴대전화를 열면 각종 정보가 얼굴을 들이밀고 찾아오는 세상에 힘들게 정보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런 정보 중에는 ‘뉴스인 듯 뉴스 아닌 뉴스 같은 뉴스’가 ‘가짜 뉴스’와 뒤섞여 돌아다닌다. 뉴스를 보지 않으면서 매일 뉴스를 읽고 산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히 틀리는 말이 아니다.
요즘 세대에게 세상으로 열린 창은 휴대폰과 OTT 서비스며, 뉴스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접한다. 뉴스에 더 관심이 있는 젊은이는 그런 관계망 서비스가 제공하는 뉴스 레터나 다양한 계정을 팔로하며, ‘뉴닉’ 같은 뉴스 정리 플랫폼으로 뉴스를, 지식 플랫폼으로 교양을, 그리고 거기 달린 댓글로 여론을 감지한다. 그러나 그렇게 ‘큐레이션’된 추천 뉴스가 정확하고 균형 잡힌 것인지, 여론의 지형은 평평하며 논평은(만약 있다면) 건강한지, 알 길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 세상에 이상한 일이 터지자 궁금증에 자신만의 ‘거품’에서 잠시 나와 또 다른 바다에서 정보를 낚다 보니 “오늘 제가 자료를 찾다가 너무 놀랐습니다(전한길)” “와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구나(유튜버 효잉)” 같은 진술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보수 유튜버 동영상의 구독자가 급속하게 늘어난 것과 젊은 세대의 보수화는 동의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상대편 진영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들 역시 “극우 유튜버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1020을 구출해야 한다”며 머리를 짜내고 있다. 인터넷 강호에서 강자는 그들이었기에 빼앗긴 진영을 탈환하고 싶을 것이다. 그 또한 나무랄 수 없는 움직임이다. 원래 인터넷 공간이라는 곳이 알고리즘을 무기로 인간의 주목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는 곳이니까. 그래서 일찍이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이런 시대에 ‘자아’를 유지하고 살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밖에서 모르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기술이 인간을 ‘필터 버블’ 속에 가두는 일은 순식간에,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 중에는 대통령이 보수 유튜브를 과도하게 소비한 결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세상의 모든 고급 정보가 모이는 곳이니 어떤 정보를 어떻게 접하고 소화했는지 밖에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인터넷 세상이 우리에게 알려주듯, 세상에 정보가 아무리 많아도 선택적으로 흡수하며 ‘필터 버블’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은 어렵지도, 새롭지도 않은 일이다.
17~18세기 유럽을 풍미한 계몽주의는 신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나온 인간이 비로소 개인을 직시하고 합리적이고 과학적 인식에 의한 이성 계발로 인류의 보편적 진보를 꾀하려는 거대한 물결이었다. 19세기 과학 혁명과 20세기 인터넷 혁명으로 세상은 연결되고 사회는 진보했으나 그 결과 미디어에 포획당하다시피 한 우리는 새로운 문맹(文盲) 시대를 겪고 있다. 이 문맹을 타개하고, 유발 하라리가 주창한 인간됨을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분별하고 수집하여 분석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혹시 나를 둘러싼 필터 버블은 없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며, 그런 버블이 발견될 때마다 터뜨려 가면서 말이다. 21세기 계몽주의는 미디어의 거품에서 스스로를 구하는 일이다. 이번에는 그 사조가 유럽이 아니라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서 출발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