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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강 염색 이벤트. 시카고 배관공조합이 주관하며, 강위에서 보트를 타고 염색약품을 뿌린다. 해조류 등을 이용한 친환경 분말이 원료로 제조방법은 비밀이다./박진배

미국의 기념일 중에 ‘성 패트릭스 데이(Saint Patrick‘s Day)’가 있다. 아일랜드의 선교사 사망일인 3월 17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필라델피아, 뉴욕, 보스턴 등 아일랜드 이민자가 많은 미국 동부의 도시들에서는 삼위일체의 상징인 샴록(shamrock·토끼풀) 문양이 새겨진 모자나 액세서리, 녹색 의상을 입고 퍼레이드를 한다. 맥도널드는 이날을 기념하여 민트로 색을 낸 ‘샴록 셰이크’를 판매한다. 술집들은 맥주에 녹색 색소를 탄 ‘그린비어’ 이벤트를 연다. 전 도시가 녹색의 물결이다.

그중에서도 시카고의 성 패트릭스 데이는 좀 더 특별하다. 바로 강을 염색하는 이벤트 때문이다. 1961년 시카고의 배관공이 옷에 묻은 녹색 약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다음 해부터 실행한 이 연례행사는 6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다. 지금도 ‘시카고 배관공 조합’이 주관해 강에서 보트를 타고 염색 약품을 뿌린다. 해조류 등을 이용한 친환경 분말이 원료다. 제조 방법은 비밀이다.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강 주변으로 운집한다. 젊은이들은 바를 옮겨 다니며 한 잔씩 하는 ‘바 크롤(bar crawl)’을 시작한다. 해마다 100만 명의 인파가 모이고 전 세계로 소개되는 이벤트다.

시카고의 ‘성 패트릭스 데이(Saint Patrick‘s Day)’ 이벤트. 삼위일체의 상징인 샴록(shamrock, 클로버) 문양이 새겨진 모자나 액세서리, 녹색 의상을 입고 퍼레이드를 한다. 전 도시가 녹색의 물결이다./박진배

다른 도시들도 흉내 내서 강을 물들이지만 시카고 같은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다. 그 이유는 건축 환경 때문이다. ‘미국의 건축 수도’라는 별명답게 시카고 강 주변 건축물과 다리들이 지극히 아름다워서 행사가 돋보이는 것이다. 강변에 위치한 시카고의 명물 ‘마리나 시티(Marina City)’가 한 예다. 옥수수 속대를 세워 놓은 형태로 유명한 이 아파트의 외관이 이날따라 특별하게 보이는 건 발코니마다 녹색 옷을 입고 강 염색을 구경하는 사람들 모습 때문이다. 역시 도시 디자인의 완성은 사람이다.

인파가 많아 강 바로 앞자리가 아니면 염색하는 배를 구경하기 어렵지만 시민들은 서로서로 양보하며 모두 골고루 볼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렇게 간결한 이벤트 하나로 전 도시가 한마음으로 축제를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부럽다.

시카고의 강 염색 이벤트. 다른 도시가 시카고의 강 염색 이벤트를 흉내내지 못하는 건 건축 환경 때문이다. ‘미국의 건축 수도’라는 별명답게 시카고 강 주변 건축물과 다리들이 지극히 아름다워서 행사를 더욱 빛내는 것이다./박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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