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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버킷 리스트’ 하면 나는 죽음을 먼저 떠올렸다. 이 말을 유행시킨 영화의 주인공이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노인 둘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버킷 리스트에는 언젠가 해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미래 시제의 소망이 가득하다. 번지점프나 패러글라이딩 같은 것도 있지만 가장 많은 건 타지마할, 피라미드 같은 여행 목록들이다.

그런데 곽세라의 책 ‘나의 소원은, 나였다’를 읽다가 “정말 마지막 순간이 오면, 마음은 가보지 못한 길을 가려 들지 않는다. 대신 추억 속 그 길을 다시 걷고 싶어 하고 내가 알던 이들을 한 번 더 보고파 한다”라는 문장을 읽었다. 지름 21센티미터의 암을 선고받은 저자가 벼랑 끝에서 떠올린 건 버킷 리스트가 아니라 앙코르 리스트였다. 죽음이 비통했던 이유는 ‘잃어버릴 미래’ 때문이 아니라 ‘사라져 갈 과거’를 이제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니나 상코비치의 책 ‘혼자 책 읽는 시간’에도 비슷한 얘기가 등장한다. “종으로서의 인간의 생존은 기억하는 능력”에 달려 있고 “한순간을 다시 살아내는 능력”이 결국 우리를 살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죽음, 말기 암 선고 같은 극단의 상황에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고통이 가득한 현재가 아니라, 의미 있던 과거라는 뜻이다. 아이가 치던 피아노 소리, 선풍기 앞에 앉아 먹던 수박의 냄새, 꼭 안아주던 엄마의 포옹 같은 기억이 우리를 죽음이 아닌 삶 쪽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어쩌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끝내 그리워할 것들은 살아보지 못한 미래가 아니라 이미 살아본 삶, 그래서 다시 살고 싶은 삶이다. 걷지 못한 길이 아니라 걸어서 함께 충만했던 길이며, 맛보지 못한 것이 아닌 맛보아서 행복했던 것들이다. 그러니 버킷 리스트는 미래와 과거 두 방향 모두에서 적혀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죽기 전이 아니라, 생생히 살아 있을 때 말이다. 생의 마지막에 대한 생각 없이 삶의 깊이는 생기지 않는다. 어둠이 있을 때라야 빛이 의미 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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