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쓰는 일도 야구 투수의 구질과 비슷하다. 구질의 다양성이 요구된다. 타자가 이거 던질 거다 생각하면 투수는 저걸 던져야 한다. 전성기 때 선동열은 강속구와 함께 슬라이더가 일품이었다. LA다저스의 클레이턴 커쇼도 구질이 너덧 개쯤 되니까 10년 넘게 메이저리그에서 밥 먹고 사는 것이다.
요체는 강속구와 변화구의 배합이다. 관상이란 주제는 변화구의 영역에 해당한다. 요즘 주변에 하도 강속구 던지는 칼럼들이 많아서 쉬어가는 의미로 변화구를 던질까 한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사모펀드 대표 김병주(MBK·Michael Byungju Kim)의 관상을 멧돼지로 감정하고 싶다. 만나보지는 못하고 사진으로만 보았는데 살이 좀 찐 통통한 스타일이다. 키도 그리 큰 거 같지 않다. 몸집도 단단하게 보인다.
멧돼지의 핵심은 저돌성이다. 저돌(猪突)의 ‘猪’가 돼지를 가리킨다. 돈이 된다고 생각하면 돌격한다. 결단력, 배짱, 섬세함을 두루 갖춘 멧돼지이다. 멧돼지의 습성은 후각이 발달해서 냄새를 잘 맡는다. 바로 돈 냄새이다. 멧돼지가 좋아하는 칡뿌리는 땅속에 파묻혀 있다. 겉으로만 봐서는 다 알 수 없고 실제로 흙을 파헤쳐 봐야 크기를 안다. 멧돼지는 주둥이로 흙을 파헤치는 실행력이 있다. 이게 과연 돈이 될지 안 될지는 가치 판단의 불확실한 영역이다. 아울러 리스크를 감수하고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필요하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리스크를 떠안는 일을 많이 하게 되면 내장 기관 중에 간담이 상하게 되어 있다. 간담 약한 사람이 가치 판단 업무를 많이 하면 병으로 단명한다. 멧돼지는 쓸개가 약이 된다. 저담(猪膽)이다. 곰 쓸개 웅담(熊膽) 다음으로 약효를 인정하는 쓸개가 바로 저담이다. 잡식성 동물의 쓸개가 좋은 법이다. 멧돼지의 ‘저담’은 깡이 있다. 돈이 품고 있는 독기, 즉 불확실성과 스트레스를 견디게 해 준다. 멧돼지는 주둥이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니까 농작물을 심어 놓은 밭을 파헤쳐서 망쳐 버리는 습성이 있다. 시장을 파헤쳐 버리는 피해를 준다. 꾀가 많은 멧돼지는 사자, 표범의 공격에 대비해서 굴 속으로 숨는다. 언론 노출을 극히 꺼리고 굴속에 숨어 있던 멧돼지가 이번에 굴 밖으로 노출된 셈이다.
산업의 발전 단계를 보면 제조업 다음에는 사모펀드라고 하는 금융투자업이다. 금융투자업 다음에 빅테크가 있는 것 같다. 금융투자업에 맞는 관상이 멧돼지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쓸개를 세상에 떼어줘야 할 타이밍이 왔다. 저담은 여러 사람에게 약이 된다. ‘돈은 강물처럼 흘러가는 거여!’ 어떤 교주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