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놀라운 기사가 실렸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싸우는 러시아 지원병 대부분이 40대 이상이고 60대, 70대 노인도 수두룩하다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독립 언론과 BBC 러시아지국이 소셜 미디어와 지역 신문 등 각종 정보를 취합해 본 결과였다.
고령화 현상은 우크라이나 군도 마찬가지다. 25~60세 남성만 징집을 하다 보니 평균 연령이 43세다. 보통 20세 안팎에 군대를 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가 25세 미만을 징집하지 않는 이유는 미래 세대의 보존을 위해서라고 한다. 러시아 지원병의 고령화는 주로 경제적 이유에서다. FT에 따르면 지원병은 계약금을 포함해 첫 1년간 최대 700만 루블(약 1억2000만원)의 보상을 받는다. 노인들은 그 돈을 자식들의 대학 등록금으로 혹은 결혼 자금으로 넘겨 그들의 인생을 바꿔주고는 전쟁터에 나간다.
물론 러시아의 전쟁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은퇴할 나이의 노인들이 전쟁터에서 죽는다는 건 더더욱 안타깝다. 하지만 그 노인들의 선택에는 고귀한 측면도 있다. 늙은 세대가 살고 젊은 세대가 죽는 것보다는 그나마 낫다. 생물학적으로 봐도 그렇다.
우리 한국 사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거꾸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제도적으로 우대받는다. 직장의 연공서열 제도를 보라. 노인이 되어야만 지하철 3인석에 앉을 수 있게 해주는 노약자석 제도도 매우 한국적이다. 반면 시간 소모적인 군대는 한창 공부하고 연애해야 할 젊은 나이에 가야 한다.
국민연금 제도도 마찬가지다. 최근 여야 합의로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젊은 시절의 나’에게서 돈을 빼앗아갔다가 ‘늙고 난 다음의 나’에게 돌려주는 제도다. 누군가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애 낳고 키우는 데 그 돈이 더 간절히 필요하다고 항변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이 나는 놀랍지 않다.
주위에 이런 얘기를 하면 언제나 돌아오는 말은 “그러는 너는 늙지 않을 것 같냐?”이다. 물론 나도 늙는다. 나도 이미 지난 청년 시절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노후가 더 걱정된다. 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는 국민이 노인일 때보다 청년일 때 더 행복한 나라가 됐으면 한다. 전쟁터에 나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노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