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하는 법, 따로 있나요?” 직업 때문에 자주 듣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KBS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던 시절의 3분 스피치를 떠올린다.
KBS에는 오랜 전통이 있다. 신입 아나운서는 퇴근 전 즉석에서 3분 동안 말을 해야 한다, 주제는 무작위, 준비 시간 없고, 메모조차 쓸 수 없다. 어떤 날은 날씨, 어떤 날은 베토벤, 어떤 날은 아침 반찬이 뭐였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해야 한다. 나는 동기들 중에서도 유독 지적을 많이 받았다. 도마 위 칼질을 기다리는 횟감이 된 기분이랄까. 말은 엉키고 생각은 끊기고, 3분 카레를 돌릴 땐 짧던 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졌을까? 그래도 누군가 혼이라도 내주던 시절이 그립다. 3분이 차곡차곡 쌓인 덕에 지금껏 말로 먹고산다.
신입으로 훈련을 받던 그 시기에, 말은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즉흥적으로 때우는 것 같아도 좋은 말은 탄탄한 구조로 흘러가야 한다. 그 감각을 만든 건 신문이다. 매일 아침, 특히 논설위원이 쓴 칼럼을 소리 내어 읽었다. 처음엔 또박또박 발음을 연습하려는 목적이었는데 전반적인 말하기 실력이 좋아졌다. 신문 사설은 대개 1500자 안팎이다. 듣기 좋은 속도로 읽으면 딱 3분 걸린다. 그러니까 사설 한 편은 3분 스피치 분량이고 한 주제로 완성된 말 한 덩어리에 해당한다. 좋은 글이 입에 붙으면 말도 좋아질 수밖에. 신문사에서도 수십 년 글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 사설을 쓴다. 대부분 데스크 출신으로, 후배 기자들의 문장을 다듬고 논리 흐름을 매만져 온 사람들이다. 당연히 문장은 탄탄해야 하고, 허투루 선택하는 단어가 없다. 간결하면서도 정교하게, 그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의 눈길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한다. 신문이라는 특성상 오늘을 얘기하다가도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도 담아야 한다. 밀도가 꽉 찬 글 한 편을 완성해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지금 이 칼럼을 쓰면서도 절감한다!
신문 사설을 교본으로 삼아 직업인으로서 말하기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신입 사원일 때는 매일 발음 하나하나를 공들여 읽었다. 뉴스 앵커가 되고는 보도국 회의를 시작하기 직전 빈 사무실에 앉아 소리 내어 읽곤 했다. 경력이 쌓인 지금도 이걸 방송에서 말로 한다면 어떻게 옮길까, 시뮬레이션한다. 매일 3분씩 주제를 던지고 논리를 확장하고 흐름을 조율하고 강한 한 문장으로 닫는다. 잘 정리한 말 한 편씩 자산처럼 모아간 것이다.
어린 나이에 메인 뉴스 앵커가 됐을 때는 걱정도 많았지만, 간결하고 깔끔한 코멘트, 시청자가 듣기 쉬운 말을 구사하려고 늘 노력했다. 3분 스피치에 덜덜 떨던 내가 지금껏 롱런한 비결을 묻는다면, 두 가지를 꼽고 싶다. 애정으로 모니터링 해주던 선배들과, 지면으로만 만난 신문 사설들이다.
요즘 필사 책이 인기를 끌지만, 소리 내어 읽어야 글과 말솜씨가 함께 단련된다고 믿는다. 발성과 발음은 나중 문제다. 입은 말하고 뇌는 정리하다 보면 좋은 말의 구조가 감각으로 몸에 남는다. 제대로 읽는 사람이 제대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