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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진영

가지에서 떨어진 낙엽이 뿌리로 돌아간다는 고즈넉한 관념은 사실 잘못이다. 그를 말해주는 성어는 낙엽귀근(落葉歸根)인데, 떨어진 잎사귀가 뿌리로 돌아가기까지는 실제 장애가 많다. 우선 낙엽을 휘날리게 만드는 가을바람이 있다.

그 또한 성어로 남았으니 이른바 추풍낙엽(秋風落葉)이다. 차츰 거세지는 서북풍 영향으로 늦가을 나무들의 잎사귀는 마구 흩날리기 십상이다. 바닥에 떨어졌어도 겨울을 예고하는 강한 가을바람에 낙엽은 이리저리 휩쓸려 다닌다.

대륙 남단 차오저우(潮州)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발흥한 세계적 중국인 부호 리카싱(李嘉誠)이 요즘 아주 뜨거운 화제다. 2013년에 이미 중국 이탈 조짐을 비쳤던 그는 2023년에 이어 올해에는 아예 중국 내 자산을 대부분 정리했다.

최근에는 자신이 소유했던 파나마 운하 양단의 항구 경영권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호응하는 미국 기업에 매각했다. 이로써 미국과 벌이는 대결을 두고 이곳에 전략적 사활을 걸었던 중국 공산당 정부에 큰 충격을 던졌다.

바람이 불면 무엇보다 먼저 눕고, 그 바람 지나가면 또 다른 어느 것보다 빨리 일어서는 질기고 질긴 경초(勁草)의 상인 기질이다. 그는 탁월한 경영 능력으로 중국 최고 부자에 이어 세계 10~20위 반열의 부호로 늘 이름을 올린다.

리카싱은 그런 빼어난 기회 포착과 위기 대응 능력으로 중국 사회에서는 ‘수퍼맨(超人)’으로 불린다. 올해 나이 97세인 그가 혈연과 지연의 뿌리로 돌아오라는 공산당식 ‘낙엽귀근’의 청유를 저버리고 ‘추풍낙엽’처럼 더 멀고 자유로운 서구로 떠났다.

그는 마침 자유와 평등의 옛 홍콩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중국이 홍콩의 활력을 없앰으로써 그 국제적 지위를 상실케 한 데 이어 홍콩의 상징적 인물마저 제 품에서 떠나도록 하고 말았다. 중국의 이런 실패는 누구 이름 앞에 적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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