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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BA ‘Our Last Summer’(1980)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가 열렸다. 산업혁명의 상징인 철을 재료로 한 랜드마크를 기획했고, 700여 편의 응모작 중 건축가 귀스타브 에펠이 제출한 철탑을 채택했다. 그리고 그해 3월 준공식이 거행됐다. 작곡가 샤를 구노, 극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 화가 장레옹 제롬 등 수많은 당대의 예술가·건축가들이 이 새로운 ‘흉물’이 아름다운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작가 모파상은 한술 더 떠 한동안 매일 점심을 에펠탑 1층의 식당에서 먹었다. 오직 그곳만이 파리에서 이 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조소와 함께. 그해 가을 방문한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만이 방명록에 이 철탑이야말로 현대 공학의 거대한 기념비적 표본이라고 찬사를 남겼다.

이 철탑은 20년 뒤 철거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론은 서서히 돌아섰고 이 탑은 파리의 문화적 자긍심이 된다. 영국의 블랙풀 타워, 일본 도쿄 타워 등 수많은 ‘오마주 탑’이 속속 만들어진 것만 보아도 에펠탑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

파리를 점령한 히틀러는 이 탑에 오르고자 했다. 그러나 프랑스군이 후퇴하며 승강기 케이블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걸어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다. 파리 함락 직전 에펠탑과 파리 시내 전체를 파괴하라는 히틀러의 명령 또한 폰 콜티츠 장군의 불복종으로 실현되지 못한다.

스웨덴 그룹 아바는 아름다운 이 발라드에서 파리를 예찬한다. “우린 강을 따라 걸었어/그리고 우린 풀밭에 앉았지/에펠탑 옆에서/우리가 만나서 너무 행복했어/후회 없는 시대였지/오, 그래. 그 미친 시절, 그때가 바로 그때였어/플라워 파워의 그 시대(We made our way along the river/And we sat down in the grass/By the Eiffel tower/I was so happy we had met/It was the age of no regret/Oh, yes/Those crazy years, that was the time/Of the flower-power).” 플라워 파워란 60년대 청년 세대의 비폭력 반전 평화운동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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