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과학기술의 패권은 미국이 잡고 있고, 중국이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미국의 패권이 영원할 것 같지만, 역사를 보면 영원한 것은 없다. 16세기 과학 강국은 이탈리아였고, 17세기에는 영국이었다. 18세기는 압도적으로 프랑스였다. 독일 과학은 19세기 중엽부터 급부상했다.
허약한 미국 과학이 패권의 기회를 잡은 것은 1930년대에 유럽 과학자들이 망명하면서였다. 물리학자, 화학자, 심리학자, 의학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유럽 최고의 과학자들이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독재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실험 중심의 미국 과학과 이론 중심의 유럽 과학이 상생적으로 결합했다. 과학과 첨단 기술의 발전이 뒤를 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과학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과학자의 독립성과 학문적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변화로 인해 사기가 저하된 미국 과학자들은 학문적 망명을 고민한다. 최근 ‘네이처’의 설문조사에서 미국 과학자의 75%가 미국을 떠나고 싶다고 답했다. 트럼프의 반과학적 정책은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약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의학, 기후변화, 에너지처럼 국제적 협력이 중요한 분야의 과학 연구 전반에 악영향을 준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유럽 국가들은 오히려 쾌재를 부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유럽 국가가 연구 환경의 자유로움과 안정적인 지원을 강조하면서 미국 과학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단기적으로 유럽에 이득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계가 정치적 변덕에 휘둘리는 선례를 만든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해법은 아니다.
과학이 정치의 도구로 전락할 경우, 사회 전체의 합리적 의사 결정 능력도 함께 약해질 수밖에 없다. 카르텔 운운하면서 연구 예산을 20% 이상 삭감한 윤석열 정부가 결국 탄핵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했다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과학의 독립성과 윤리를 지키기 위해 더욱 힘을 모아야 할 이유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