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크라이나발 전쟁 뉴스를 보면 옛날 일본 만화영화 ‘기동전사 건담’이 떠오른다. 이 작품은 군인들이 거대 로봇에 탑승해 치고받고 싸우는 미래 세계를 그렸는데, 보다 보면 ‘로봇을 무선으로 조종하지 않고 왜 위험하게 굳이 사람이 직접 탑승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작자들은 ‘미노프스키 입자’라는 가상의 전파 방해 물질 때문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이런 입자가 우주에 대량 살포되어 무선 통신이 불가능해졌기에 첨단 로봇들도 구시대적으로 조종할 수밖에 없다는 설정이다.
이런 만화 같은 이야기가 우크라이나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여러 외신 보도에 따르면, 작년부터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모두 공격용 소형 무인기(드론)에 광케이블을 길게 매달아서 조작하기 시작했다. 서로 간에 전파 방해가 극심하다 보니 무선으로 조종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연날리기하듯 줄을 달아 날리는 것이다. ‘건담’ 만화의 전파 방해 세계관이 완전 허풍은 아니었나 보다.
러시아군이 쓰는 유선 드론에는 최대 길이 10킬로미터의 가는 광케이블이 돌돌 말려 들어있다. 날아가다가 줄이 나무나 전봇대에 걸릴 수도 있고 다른 드론들과 엉킬 수도 있지만 그런 위험을 고려하더라도 무선으로 조작할 때보다 생존율이 높다고 한다. 조종사에게 전송되는 이미지도 더 선명하다. 써보니까 너무 효과적인 것이다. 그래서 다급해진 우크라이나가 지난 주말 국경 수백 킬로미터 너머에 있는 러시아의 광케이블 생산 시설을 공습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있기 전에 유선 조작이 무선 조작을 대체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구식이라 여겨졌던 기술이 신기술보다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를 ‘리버스 이노베이션(역혁신)’이라 부른다. 리버스 이노베이션은 ‘새 기술이 옛 기술보다 좋다’는 고정관념부터 깨야 해서 실행하기 어렵다. 현장에 있는 누군가가 기존의 관성을 거스르는 아이디어를 냈고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그것이 받아들여진 것 같다.
미 포브스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올해 드론을 450만대나 생산해 전장에 투입할 계획을 세웠다. 불과 3년 만에 전쟁의 패러다임이 이렇게 바뀌었다. 앞으로는 또 어떻게 바뀔지 상상도 안 된다. 많은 이는 장거리 미사일과 인공지능 전투 로봇의 시대를 예상하지만, ‘건담’ 만화에서처럼 중세적 육박전 형태로 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변화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전술적, 산업적 유연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