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산불이 나면 산림청에선 으레 임도를 더 많이 만들고, 숲 가꾸기를 열심히 하고, 성능 좋은 헬기를 더 갖춰야 산불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해왔다. 그런데 이게 다 틀린 말이라는 주장이 몇 년 전부터 제기됐다. 사실과 완전히 거꾸로이거나 조직 이기주의성 과장이라는 것이다.
논란이 표면화한 것은 2023년 3월 합천·하동 산불이 계기였다. 산림청은 임도가 있는 합천의 3월 8일 산불 때는 고성능 진화차가 밤새 임도를 누비며 물을 뿜어 헬기를 동원하지 못했어도 진화율을 82%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했다. 반면 3월 11일 하동 산불은 임도가 없어 밤사이 진화 진척률이 17%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해 4월 환경운동연합의 창녕·김해양산·진주 등 경남 지역 조직들과 경남시민환경연구소 등이 기자회견을 갖고 “임도를 갖췄고 숲 가꾸기로 하층 식생을 제거한 합천에선 산불이 나무 꼭대기까지 태우며 162ha 피해를 냈고, 임도가 없고 숲에 손을 대지 않은 하동에선 91ha 타다가 스스로 꺼졌다”고 주장했다.
환경 단체들은 숲 가꾸기 사업이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는 남기고 불에 강한 참나무류를 베어버리는 방식이어서 산불을 촉진시킨다는 주장이다. 소나무가 휘발성 오일 성분을 갖고 있어 불에 잘 탄다는 점은 산림청도 인정한다. 그에 반해 활엽수의 두꺼운 껍질 코르크층은 발화 온도가 높아 산불에 견디는 힘이 강하다. 환경 단체들은 더 나아가 키 작은 잡목, 덤불, 활엽수 낙엽으로 빽빽한 숲에선 바람 속도가 느려지고 바닥층이 젖어 있어 산불 확산을 늦춘다고 주장했다. 주로 부산대 홍석환 교수와 기후재난연구소 최병성 대표 등이 뒷받침하고 있는 논리다. 홍 교수는 2023년 10월 국회의 산림청 국정감사 때 당시 윤미향 의원 측 참고인으로 나와 같은 취지의 주장을 폈다.
반면 산림청은 숲에 쌓인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 덤불 등은 산불 연료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걷어내는 솎아주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미국·유럽 등은 기계적 솎아주기에서 더 나아가 일부러 하층 식생을 태워 소진시키는 ‘처방적 산불(prescribed burn)’까지 동원하고 있다. 산림청은 2023년 숲 가꾸기를 하지 않은 하동 산불 피해가 합천 산불보다 작았던 것은 하동에 때마침 내린 비 덕분이었을 뿐이라고 했다. 지난달 21일 시작된 산청 구곡산 산불이 30일 주불이 잡힌 이후로도 수시로 재발화했던 것도 활엽수림의 두꺼운 낙엽층 밑에 숨은 잔불 때문이라는 것이다.
임도 문제도 견해가 완전히 정반대다. 홍 교수, 최 대표 등은 도로 부지로 벌목한 곳의 풍속이 숲속보다 20배 빨랐다는 독일 연구 결과가 있다며 임도가 바람 통로 역할을 해 산불을 더 번지게 한다는 논리다. 윤미향 전 의원도 홍 교수에게 가세해 ‘선진국 대비 한국은 임도가 부족하다’는 산림청 자료는 통계 왜곡이라고 했다. 일본·미국·오스트리아 등은 임도뿐만 아니라 산림 내 지방도와 사유 도로까지 합친 계산인데 그걸 국내 순수 임도 통계와 비교했다는 것이다. 이번 산불 이후 지난 3일엔 MBC도 임도 확충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도를 했다. 노컷뉴스, 한겨레21, 오마이뉴스 등도 매년 3000억원을 쓰는 숲 가꾸기, 2000억원 이상 드는 임도 건설이 산불 확산을 조장하고 있다는 내용의 인터뷰와 기획 보도를 하고 있다. 홍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선 진화 헬기가 물을 뿌릴 때 만드는 강한 하강풍이 불붙은 낙엽을 흩뜨려 산불 확산을 부채질한다는 뜻밖의 주장까지 하고 나섰다. 어쩌다 그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극히 예외적 상황을 일반화시켜 헬기 무용론까지 들고나오는 것은 해도 너무 한다는 느낌이다. 산불과 사투를 벌이는 진화 대원들에 대한 발길질 아닌가.
비주류의 소수 의견에서 새 발상, 새 관점을 얻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산림청은 내화수림 조성 등 소나무 숲의 산불 취약성을 극복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숲 가꾸기도 수종 균형 등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임도 밀도, 숲 가꾸기 효과 논란이 몇 년째 되풀이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산림청이 인터넷 검색 자료에만 의존하지 말고 각국 실상을 정확히 조사해 논란에 확실한 매듭을 지어야 한다.
환경 단체나 전문가들은 정책을 비판할 때는 충분히 검증된 자료로 신뢰성 있는 주장을 펴야 한다. 튀는 논리는 주목은 받겠지만 정책 혼선과 시간, 재정의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엔 공적 권위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고, 사회운동 단체와 일부 언론 등엔 저항 문화적 분위기도 있다. 임도, 숲 가꾸기 같은 실무 논쟁이 자칫 진영 대립 비슷하게 번져갈 우려는 없는지도 걱정이다. 임도 무용론, 숲 가꾸기 유해론 정도의 주장을 내세우려면 관련 학계에서 학술적 인정을 받은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