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6 소총은 개인적으로 각별한 추억이 담긴 군용 화기다. 지난 1986년 경북 영천에 위치한 육군 제3사관학교에서 6개월 동안 군사 훈련을 받았다. 영천 고경면에 있는 사격장에서 100m, 150m, 200m 사격 표지를 순서대로 맞히는 사격 시험을 치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당시 사용한 M16 소총은 가볍고 정확성이 뛰어난 데다, 세련된 디자인 덕분에 외계인 소총처럼 유려한 외모를 자랑했다.
M16 소총은 미국의 총기 개발자 유진 스토너가 만든 AR-15 계열 5.56㎜ 돌격 소총이다. 우리 군은 월남전 이후인 1970년 3월, 한미 양국이 M16A1을 국내에서 라이선스 생산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이 총을 본격적으로 들여오게 됐다.
그 결과 1974년 3월부터 미국 콜트사에 1정당 7달러의 로열티를 지급하며 M16A1을 국내에서 라이선스 생산하기 시작했다. 다만 계약상 생산 수량은 60만정으로 한정돼 있었다.
당시 70만명에 달하는 정규군은 물론, 수백만 명의 예비군까지 무장시키기에는 60만 정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방과학연구소가 K2 소총 개발에 나섰고, 대우정밀(현 SNT모티브)이 생산을 맡았다. M16과 K2 소총은 그렇게 우리 자주국방(自主國防)의 역사를 온몸으로 증명해 온 무기들이다.
국방이란 적의 침략에 대비해 국가가 마련하는 사상과 제도, 그리고 방위 활동을 말한다. 그리고 그 최후의 수단은 결국 ‘전쟁’이다.
하지만 전쟁의 형태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핵무기 시대를 지나, 이제는 ‘인공지능 전쟁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인공지능 국방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적을 무력화하며 승리하는 방식이다. 화약과 총알 없는 전쟁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전쟁이다. 이제 자체 인공지능 없이는 자주국방도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인공지능 국방은 6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가장 먼저 1단계로 군사 행정을 효율화한다. 자원의 배치, 예산의 계획, 인사의 결정, 병사 건강과 심리 검사 등에 활용할 수 있다. 국방비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2단계에서 인공지능은 경계를 위한 자동 탐지와 판독에 사용한다. 비무장지대(DMZ) 무인 카메라에 인공지능 기능을 추가해서 비상 상황에 대한 무인 탐지와 경계 그리고 반응이 가능하다. 경계 병사의 보조 역할도 잘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졸거나 잠을 자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합성곱 신경망(Convolutional Neural Network) 모델을 사용할 수 있다.
3단계에선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서 정보 분석과 심리전에 사용한다. 전파 신호와 음성 신호의 자동 기록과 분석이 가능하다. GPT에 사용한 트랜스포머 모델(Transformer Model) 계열의 언어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선 병사가 하루 종일 헤드폰을 쓰지 않아도,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신호를 청취하고 중요한 정보만 골라 지휘관에게 정리·보고한다. 적국 데이터 해킹도 AI가 맡는다. 나아가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가짜 뉴스와 영상을 만들어 퍼뜨리며 심리전에 활용할 수 있다. 이른바 디지털 ‘AI 삐라’ 시대다.
4단계에서는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서 군사용 무기로 사용된다. 군사용 인공지능 로봇은 드론, 탱크, 전투기, 잠수함, 우주선, 그리고 인공위성까지 확대된다. 인공지능 기반 자동화를 통하여 전쟁 수행 능력의 정확성과 효율성이 향상된다. 그리고 상황 판단에 생성 인공지능의 판단 능력과 추론 능력이 더해진다.
5단계에서는 인공지능 에이전트(Agent)가 지휘관을 대체한다. 일종의 군사용 전문 참모인 인공지능 에이전트는 보병, 포병, 정보 등 전문 분야에 특화된 학습을 받는다. 그리고 언어 모델(LLM)을 이용해서 사병 또는 동료 지휘관들과 직접 소통한다. 사관학교 수준 교리와 추가로 전문 학습을 시킬 수도 있다. 교관 매뉴얼도 학습한다.
마지막 6단계에서는 인공지능이 전쟁 전체를 자체 수행할 수 있다. 여기서는 게임에 사용되는 인공지능으로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 모델이 사용된다. 전쟁의 시작과 종결도 인공지능이 결정할 수 있다.
인공지능 국방 시대에는 이를 뒷받침할 전문 AI 방산 기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술 개발과 인재 확보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의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Palantir Technologies)’다. 회사명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마법의 구슬 ‘팔란티어’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팔란티어 관련 문서에 따르면, 이 회사의 주요 거래처에는 CIA, FBI, 미 해병대, 공군 특수작전사령부, 영국 비밀정보국 등 각국의 국방·안보 기관이 포진해 있다. 팔란티어는 방대한 군사 데이터를 빠르고 정밀하게 분석하는 설루션을 제공하며, 인공지능 기반 데이터 예측 기술을 앞세워 급성장 중이다. 2022년에는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군사 작전에 데이터 분석 기술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역시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미래 인공지능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려면 제일 먼저 독립된 인공지능 국방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고, 학습용 데이터를 확보하고, 군사 전용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하며 단계별 실전 훈련을 해야 한다.
AI 데이터 센터는 1만대 이상의 그래픽 처리 장치(GPU)를 확보해야 하며, 이를 깊은 땅속이나 산속 터널 내에 설치하여 핵무기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팔란티어와 같은 국방 인공지능 기업을 육성해 국방 분야에서의 데이터 분석 및 예측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기업들이 인공지능 방산 기술을 발전시키고,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 방산 기업들에 학습용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의 패권 국제 정세에서 핵무기가 없으면 우크라이나처럼 ‘외교의 협상 카드’가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미래 국방력은 핵무기 다음으로 인공지능 무기에 달려 있다. ‘인공지능 국방 무기’가 없으면 ‘외교의 협상 카드’도 없다는 얘기다. K2 소총을 기억하면서 인공지능 자주국방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