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대사가 중국에서 활동을 마친 뒤 인도로 돌아갈 때는 맨발이었다. 그 무렵 신발 한 짝은 당나라에 남겨 두었다. 다른 한 짝은 지팡이 끝에 걸고서 총령(葱嶺, 파미르 고원)을 넘어가는 모습은 뒷날 동아시아에서 문인화(文人畵)의 한 갈래인 달마도(達磨圖) 소재로 애용된다. 그림에 ‘파미르 고원 길을 걸어가면서 손에는 신발 한 짝을 들고 있구나(葱嶺途中 手携隻履)’라는 시문이 보태지면서 비로소 선화(禪畵)가 완성되었다.
그 인도 땅에서 지금도 종교적인 이유로 여전히 살아있는 맨발 문화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수도인 델리에서 연꽃사원(바하이 예배당)을 찾았을 때도 맨발로 들어가야 했다. 27개 연꽃잎 형상을 9개의 인공 연못이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명성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외형은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완성판이라고나 할까. 2500명 동시 수용이 가능한 넓은 강당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창밖에서 비치는 물빛의 아름다움이 잘 어우러진 명상 센터다. 다종교 사회인 인도에서 종교 간의 화합이란 해묵은 과제를 건축을 통해 해결코자 하는 간절함이 맨발을 통해 전해졌다.
이어서 인근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힌두교 사원인 ‘악샤르담(Akshardham)’을 찾았다. 12만평 넓이에 수천 명의 석조건축 전문가와 돌조각 장인이 합심하여 2005년 완공했다. 힌두문화와 인도의 분위기를 웅장하면서도 디테일하게 잘 묘사한 성전으로 유명하다. 2018년 여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문하면서 우리나라 언론에도 기사화된 관광지이기도 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입구에서 신발을 맡긴 후 양말로 끈을 삼아 승복바지 끝단을 동여매고서 젖은 계단 위로 조심스럽게 한 걸음 두 걸음 내디뎠을 때 느꼈던 묘한 촉감은 한 달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여운으로 남아있다.
맨발 이야기라면 위(魏)나라 백족(白足) 대사와 조선의 세조(1417~1468) 임금이 빠질 수는 없겠다. 백족 스님은 ‘양고승전(梁高僧傳) 신이(神異)’편에 기록될 만큼 하얀 발로 유명하다. 발이 얼굴보다 더 깨끗했다고 한다. 게다가 흙탕물 속을 걸어가더라도 발이 전혀 더러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인 담시(曇始)보다 별명인 ‘하얀 발’로 불릴 정도였다.
세조는 정치적 격무와 스트레스로 인한 피부병 때문에 엄청 고생했다. 왕의 두 발 역시 염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충북 보은 속리산으로 가는 도중 청주 교외의 작은 계곡을 찾아 잠시 쉬면서 발을 씻었다. 이내 종기와 진물이 사라지면서 본래 발 모습을 되찾았다. 그 인연으로 산 이름까지 백족산(白足山)으로 바뀌었다고 입에서 입으로 전한다.
마지막 성지순례 일정까지 무사히 마치고 공항에 도착한 후 몇 시간을 견딘 젖은 신발과 양말을 정리했다. 새 양말과 마른 신발로 갈아 신은 뒤 기분 좋게 통관하려는데 검색대 앞에서 보안 요원이 신발까지 벗으라고 외친다. 내키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또 맨발이 되어야 했다. 어쨌거나 광고 회사에 불려가서 발 사진만 찍힐 만큼 흙탕물에도 젖지 않는 잘생긴 ‘하얀 발’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무좀 혹은 상처 없는 건강하고 평범한 맨발이 제일이라 하겠다. 그 맨발이야말로 진짜 백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