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4월 17일 나는 러시아 페트로그라드 핀란드역에 서 있다. 어제, 레닌을 포함한 32명의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이곳에 도착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 일을 자신의 책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서 ‘세계를 향해 날아간 탄환’이라고 표현했다. 그들은 4월 9일 취리히에서 출발했었다. 망명 중이던 레닌은 평소 동지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혁명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데 어느 날 아침 깨어보니,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10월 혁명’이 그레고리력으로는 11월인 것과 마찬가지로, 줄리안력으로 이름 붙여진 2월 혁명은 1917년 3월 8일에 터졌다.
레닌은 러시아와 전쟁(제1차 세계대전) 중인 독일에 자신들 32인 외에는 아무도 출입 못 하는 치외법권 열차의 제공을 요구했다. 이 ‘봉인열차(封印列車)’는 독일을 가로질러 러시아를 향해 치달았다. 이런 독일의 배려는 볼셰비키가 러시아를 장악하면 러시아가 전쟁에서 발을 빼게 되리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실지로 혁명에 성공한 레닌은 독일과 조약을 맺고 연합군에서 탈퇴한 뒤 러시아 내전에 집중한다. 그러나 혁명을 위해 적국 독일과 화합했던 레닌의 ‘반역적 융통성’은 위기로 되돌아온다. 7월 4일부터 신문들을 중심으로 레닌이 독일의 스파이라는 얘기가 퍼진다. 볼셰비키들이 체포되고 20만루블의 현상금이 붙은 레닌은 핀란드로 피신한다.
한데, 이때 천운이 레닌을 구한다. 코르닐로프라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수포로 돌아가고, 그 과정 덕에 레닌은 복귀해 ‘러시아 10월 대혁명’에 성공한다. 총리 케렌스키는 미국으로 도망친 뒤 이렇게 회고한다. “코르닐로프의 쿠데타가 없었다면 볼셰비키 혁명도 없었을 것이다.” 역사는 광기와 우연의 연기법(緣起法)이다. 언제 어디로 어떻게 굴러갈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