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耳鳴) 때문에 청력을 검사했다. 청력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고 답답함에 한숨을 쉬었더니, 의사가 백색 소음이 수면에 도움이 될 거라며 몇 가지 소리를 추천했다. 그는 사람의 목소리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꼭 침대맡에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를 틀어 놓고 자는 오랜 버릇을 들킨 것 같았다.
활동하는 낮에는 크게 느끼지 못하다가, 자려고 누우면 선명해지는 이명은 높낮이와 볼륨을 달리하며 나를 괴롭혔다. 추천받은 빗소리·비행기 소음, 극저음 싱잉볼 등 다양한 백색 소음을 들었다. 그러다 점점 그냥 빗소리가 아니라 천둥이 섞인 빗소리나 폭우가 쏟아지는 대륙 횡단열차, 런던행 브리티시 에어라인의 밤 비행기 소리 같은 걸 찾아 들었다. 오른쪽 귓속에서 시작된 웅웅대는 이명의 주파수와 꼭 맞는 소리를 찾아 떠나는 긴 여정 같았다.
실제 눈을 감고 누우면 2만피트 상공의 밤하늘을 날거나, 오리엔탈 특급열차에 올라탄 기분이 들었다. 이코노미 중간석이 아닌, 일등석에 앉아 풍경을 보는 것 같은 안락함은 덤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와 매미 소리를 틀고 잔 어느 밤에는 잊혔던 어린 기억이 떠올라 배시시 웃었다. 나만 모를까 봐 불안해서 습관적으로 켰던 지식 콘텐츠가 사라지자 밤의 상상들이 찾아왔다. 창밖은 봄, 방 안은 장마철 한여름, 어긋난 계절의 시차도 싫지 않았다. 그리고 꼬리를 무는 상상은 내 수면에 도움이 됐다.
의사는 이명에 가장 안 좋은 게 너무 조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소란스러운 카페에서 쓴 원고가 몇 권의 책이 됐던 일을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로나 이후, 더 위생적으로 키워진 요즘 아이들이 비염이나 아토피에 취약해진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이명과 비문증이 생긴 후, 나는 더 이상 조용하지 않고 또렷하지 않은 세상에 적응 중이다. 다만 시끄럽고 흐릿하니 나에 대한 악담은 덜 들리고, 남에 관한 허물은 덜 보이길 기도한다. ‘적응하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결국 사라짐이 아닌, 받아들임과 익숙함에 관한 이야기다.